공공욕장

공공욕장

다른 표기 언어 thermae , 公共浴場

요약 고대 로마 때 발달한 대단히 복잡한 공중목욕장.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휴식과 사회활동을 위한 장소로도 쓰였다. 공공욕장은 초기 이집트의 왕궁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유적이 크게 파괴되어 그 형태를 완전히 알아내기는 힘들다.

BC 1700년경 짓기 시작한 크노소스 궁전에 있는 욕장 유적을 보면 목욕이 그리스인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틀이 잡힌 건축 형식은 로마 시대에 티투스 욕장(81), 도미티아누스 욕장(95), 트라야누스 욕장(100경), 카라칼라 욕장(217), 그리고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302경) 등과 같이 위대한 황제들의 공공욕장을 지으면서 비로소 발전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구조를 살펴보면 널찍하고 탁트인 정원 주위로 여러 클럽에 딸린 방들이 사방으로 늘어서 있고 목욕장은 카라칼라 욕장에서처럼 정원 한 가운데에 있거나 또는 티투스 욕장에서처럼 정원의 뒷부분에 자리잡고 있었다. 목욕장에는 커다란 냉수욕실(frigidarium)·고온욕실(calidarium)·미온욕실(tepidarium)과 여러 개의 작은 욕실 및 안뜰이 있었다. 노예들이 지하 통로로 눈에 띄지 않게 재빨리 움직이며 시중을 들었다. 넓은 공간을 밝게 하면서 지붕을 올리기 위해 볼트(vault)나 지붕에 클리어스토리(clerestory)를 내는 독창적인 방법이 개발되었다.

카라칼라 욕장에서 발견된 라오콘 군상과 같은 고대 조각품들로 미루어 욕장의 실내장식도 매우 호화로웠음을 알 수 있다. 바닥은 대리석을 깔거나 모자이크로 단장했고 벽은 상당한 높이까지 대리석을 붙였으며 그 윗부분은 회반죽 부조나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또한 금박입힌 청동 장식은 문짝이나 주두, 그리고 창문 가리개에 자유스럽게 사용됐다. 황제들의 욕장에 쓰인 이같은 형식을 기본으로 비록 규모는 작아도 기본 형태는 로마제국 어디서나 사용되었다.

로마인들이 정확히 어떤 순서로 목욕했는지 학자들 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대체로 표준화된 형식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목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탈의실(apodyterium)로 들어가 옷을 벗고 기름실(elaeothesium/unctuarium)에서 기름을 바른다. 그리고 나서 방이나 안뜰에서 격한 운동을 한 뒤 고온욕실로 들어갔다가 한증실(sudatorium/laconicum)로 들어가 '스트리질'이라는 휘어진 금속 도구를 사용해 몸에 덮인 기름과 땀을 긁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한 뒤 미온욕실로 들어갔다가 마지막으로는 보통 수영장이 설치된 냉수욕실로 와서 수영을 즐기고 몸에 다시 한 번 기름을 바르는 것으로 목욕과정은 끝난다.

로마의 욕장은 개인 저택에 있던 것에서부터 거대한 공공욕장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뜨거운 물과 미지근한 물, 찬물이 담긴 탕을 마련하고, 마루 밑에서 불을 지펴 그 연기와 가열된 공기를 속이 빈 벽을 통해 순환시켜(→ 온돌) 미온욕실을 포함한 온탕에 난방장치를 하며, 또한 열탕에도 따뜻한 물과 찬물을 보내도록 설비를 갖추었다.

남자와 여자는 따로 목욕을 했으며, 혼욕에 대한 기록은 1세기 때, 로마 학자인 대(大)플리니우스의 책에 처음 나온다. 그러나 혼욕은 주로 고급 창녀들에게만 국한했던 것으로 보이며 점잖은 시민들에게서 비난을 받게 되자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이를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