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라 이 아르고테

공고라 이 아르고테

다른 표기 언어 Luis de Góngora y Argote
요약 테이블
출생 1561. 7. 11, 코르도바
사망 1627. 5. 23, 코르도바
국적 스페인

요약 스페인의 시인.

당대 가장 영향력있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가 쓴 공고리스모(gongorismo)라는 바로크풍의 난해한 문체를 재능없는 시인들이 지나치게 모방했기 때문에 죽은 뒤 명성이 손상되었지만 20세기에 들어와 다시 인정받게 되었다.

어린시절 재판관인 아버지의 훌륭한 장서와 교양있는 친척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살라망카대학에서 공부한 뒤 곧 유명해졌다. 성직급을 받기 위해 성직에 올랐지만, 55세가 되어서야 사제로 서품을 받고 마드리드에서 국왕 전속신부가 되었다. 풍자시와 편지에는 그가 가난에 시달리며 불행하게 살았다고 나타나 있다. 로페 데 베가처럼 열렬한 지지자도 있었지만 경쟁자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처럼 신랄하고 가차없는 풍자로 그를 능가하며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로만세 romances〉와 〈레트리야 letrillas〉처럼 경쾌한 시와 소네트는 꾸준히 성공하였지만, 일부러 복잡하고 어렵게 쓴 장편시 〈폴리페모와 갈라테아의 우화 Fabula de Polifemo y Galatea〉·〈고독 Soledades〉(1613년 필사본으로 배포) 등은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과 미움을 샀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밝은 것과 음울한 것, 쉬운 것과 어려운 것으로 구분해보려 했다. 그러나 20세기 비평가들은 장편시의 간결하고 강렬한 문체에 의하여 희석되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통일성이 있다고 평한다.

공고리스모는 15세기 이후 스페인 시단에서 라틴어 사용을 기본원칙으로 해온 쿨테라니스모(Culteranismo:교양주의)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는 〈폴리페모와 갈라테아의 우화〉와 〈고독〉에서 라틴어 어휘와 구문을 많이 썼고 복잡한 비유와 신화의 암시를 도입하여 시 문체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렇듯 장편시에서 기교를 높이고 수식을 늘리는 데 지나치게 관심을 쏟은 나머지 처음에는 복잡하지 않았던 문장도 모호해졌다. 이와 같은 기교는 그의 대중적인 서정시에서도 보인다.

19세기에 환영받지 못한 모호하고 난해한 공고라이의 시는 1927년, 그의 300주기를 맞으면서 그 중요성을 다시 인정받았다. 그의 시의 차가운 아름다움은 마침내 '시를 위한 시'의 진가를 감상할 줄 아는 진정한 독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1966년 R. O. 존스가 영역한 시선집이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