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고엽제

다른 표기 언어 defoliant , 枯葉劑

요약 제초제의 일종. 농업의 용도로 제조되었으나, 다이옥신과 같은 독성이 함유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 베트남 전에서 미군에 의해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독성의 후유증으로 살포지역의 생태계가 파괴, 교란되었으며, 주민 뿐 아니라 참전군인들에게 각종 질병과 장애가 발생하면서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에게서도 집단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목차

접기
  1. 정의
  2. 베트남 전과 고엽제
  3. 후유증
  4. 참전군인의 피해
고엽제(defoliant)
고엽제(defoliant)

정의

나무와 초목을 고사시키는 목적으로 제조된 화학약품. 잡초의 제거를 위한 제초의 목적으로도 사용되지만, 고엽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미군이 베트남 전에서 사용한 고엽제의 부작용 때문이다. 당시 전투지역에 대규모로 살포된 고엽제에 다이옥신과 같은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부작용으로 베트남 주민 뿐 아니라 참전군인들에게도 암을 비롯한 질병과 기형아 출산이 발생했다.

베트남 전과 고엽제

미군은 베트남 전(1955~1975) 중반인 1962년부터 1971년까지 '랜치핸드 작전(Operation Ranch Hand)을 진행하면서 고엽제를 사용했다. 이 작전의 목적은 월맹정규군이 은신해 있는 정글을 파괴하여 게릴라전을 주된 전술로 삼았던 월맹정규군의 은신처를 없애고, 농업지대의 경작을 불가능하게 하여 게릴라의 식량의 자급을 방해하며, 게릴라 은거의 기반이 되는 농업지대의 주민들을 도시 지역으로 옮기도록 하기 위한 데 있었다.

이 작전 기간 동안 사용된 대표적인 고엽제는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는데, 유독한 제초제인 2,4,5-트리클로로페녹시 초산과 2,4-디클로로페녹시아세트산을 50:50의 비율로 섞은 분말 형태로, 후에 유독성 다이옥신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엽제로는 에이전트 오렌지 뿐 아니라 에이전트 그린(Agent Green), 에이전트 블루(Agent Blue), 에이전트 퍼플(Agent Purple), 에이전트 핑크(Agent Pink), 에이전트 화이트(Agent White) 등이 활용되었는데, 주로 미국의 다우케미칼컴퍼니(The Dow Chemical Company), 몬산토(Monsanto Company) 사와 같은 화학제품 제조업체에서 제조했다.

에이전트 오렌지를 포함한 고엽제는 메콩 삼각주 지역 일대를 중심으로 한 베트남, 라오스의 동부지역, 캄보디아와의 접경지역에 광범위하게 살포되었는데, 작전기간 동안 베트남의 12%에 해당하는 지역에 약 8,000만 리터가 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남부 베트남의 1,000만 헥타아르에 해당하는 농지가 파괴되었으며, 농업의 기반을 잃은 농촌 지역 주민들 약 800만 명이 도시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후유증

에이전트 오렌지를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살포된 고엽제는 생태계의 파괴뿐 아니라 인체에도 많은 피해를 주었다. 베트남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약 480만 명의 베트남인이 고엽제에 노출되었고, 그중 40만 명이 장애와 질병에 시달리다가 죽었으며, 50만 명의 어린이가 기형으로 출생했다고 보고되었다.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과 같은 유독물질은 선천성 구개파열, 다지증, 탈장, 정신장애, 피부질환, 폐질환 등의 장애와 기형을 유발했다. 특히 다이옥신은 토양에 축적되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원인물질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주민들은 계속되는 오염물질의 위협속에 살고 있다.

참전군인의 피해

이 기간 동안 현지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군인들에게서도 고엽제의 후유증이 발생했다. 전립선암, 폐암, 간암, 림프종 등의 암, 폐질환과 같은 호흡기 장애, 피부 질환, 신경정신과적 장애 등이 참전군인에게서 발생하면서 점차 사회문제로 발전했다. 1978년경부터는 미국 정부를 상대하여 소송이 이루어졌고 의회에서는 청문회를 열어 진상을 규명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인 가운데에서도 유사한 피해를 입은 경우가 속출했는데, 이는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 살포지역의 약 80%가 한국군 작전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에 대한 경고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고엽제에 노출되었던 많은 한국군인이 전역 후 발생한 후유증으로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