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빈드 싱

고빈드 싱

다른 표기 언어 Gobind Singh 동의어 Gobind Rāi
요약 테이블
출생 인도 비하르 파트나, 1666경
사망 1708. 10. 7, 마하라슈트라 난데드
국적 시크교

요약 시크교의 제10대이자 마지막 구루(지도자).
본명은 Gobind Rāi.

시크교도의 군사결사인 할사를 창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할사).

군대생활을 좋아한 할아버지 구루 하르고빈드의 기질을 물려받았으며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모국어인 펀자브어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어·아랍어·산스크리트에도 능통한 언어학자였다. 더 나아가 시크교 율법을 집대성했고, 시를 썼으며, 〈다삼 그란트 Dasam Granth〉(제10권)라는 시크교 저서를 쓴 유명한 저자였다(→ 〈다삼 그란트〉).

가장 뛰어난 업적은 시크교에 확고한 군사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어느날 아침 예배를 드리고 난 뒤 그는 수많은 시크교도 앞에 앉아 묵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나 "내 칼이 목숨 하나를 원한다. 누가 앞으로 나와서 믿음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는가?" 하고 말하였다. 두려움과 불안과 불신이 군중들을 휘감았다. 마침내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구루와 그 희생자가 천막으로 들어갔다. 몇 분 뒤 고빈드 싱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지원자를 찾았다. 5번째 지원자가 나올 때까지 이 의식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5명은 모두 살아서 다시 나타났다. 고빈드 싱은 그저 그들의 믿음을 시험해보았을 뿐이었다. 그들은 '판츠-피아라'(pañc-piāra:사랑스러운 다섯)라는 칭호를 받고 1699년 결성된 할사라는 거대한 시크교 군사결사의 핵심이 되었다.

고빈드 싱은 자신을 따르는 시크교도들에게 투쟁정신을 심어주려는 계산하에 행동하였다. 호전적인 시와 음악을 짓고 교도들에게 칼의 사랑, 즉 '칼의 성례(聖禮)'를 널리 퍼뜨렸다. 그는 재편성된 시크군의 정예부대인 할사를 거느리고 두 전선에서 적과 맞붙었다.

한 부대는 무굴인과 싸웠고 다른 부대는 산 속의 부족들과 싸웠다. 그의 군대는 시크교도의 종교적·정치적 자유를 위하여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시크교 정신에 전적으로 헌신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자유를 위해 비싼 대가를 치루었다. 암발라 근처에서 벌인 전투에서 4명의 아들을 모두 잃었고 뒤에는 아내와 부모까지도 전투중에 잃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앙갚음하려는 한 파슈툰 부족민에 의해 살해되었다.

고빈드 싱은 자신이 인간으로서는 마지막 구루라고 선언하였다. 그뒤부터는 성전 〈아디 그란트 Adi Grnath〉가 시크교의 구루로 되었다. 고빈드 싱은 오늘날 시크교도들의 마음에 군성(軍聖)이라는 기사도의 이상으로 아로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