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립

강홍립

다른 표기 언어 姜弘立 동의어 내촌, 耐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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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560(명종 15)
사망 1627(인조 5)
국적 조선, 한국

요약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 자는 군신(君信), 호는 내촌(耐村). 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사상이며, 아버지는 참판 신(紳)이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급제했다. 1605년 진주사의 서장관으로 명(明)에 다녀왔다. 그뒤 한성부우윤·순검사를 지내고 1618년(광해군 11) 진녕군(晋寧君)에 봉해졌다. 이무렵 명은 후금이 변경에 침입하는 등 세력을 크게 확장하자, 조선에 원병을 청해왔다. 광해군은 명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강홍립을 오도도원수(五道都元帥)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기로 했으나 후금과의 관계를 의식하여 전세를 보아 행동하라는 지시를 함께 내렸다. 이에 부원수인 김경서(金景瑞)와 더불어 1만 3,000여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다.

1619년 명 제독(提督) 유정의 군과 합류했으나 부차에서 크게 패하자, 광해군의 비밀지시에 따라 남은 군사를 이끌고 후금군에 투항했다. 이듬해 조선 포로들은 석방되어 돌아왔으나, 그는 김경서와 함께 계속 억류되었다(→ 부차전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선도(先導)로서 입국하여 화의를 주선했다. 그뒤 국내에 머물게 되었으나, 역신으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했다. 죽은 뒤에 복관되었다.

강홍립의 묘
강홍립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