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화가

유민화가

[ Yimin huajia, Remnant artists , 遺民畫家 ]

요약 명말 청초 왕조교체기 청에 반대하며 은둔하며 정통파와 구별되는 개성적 작품을 남긴 화가들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석도·주탑·홍인·석계 등 네 명의 승려화가를 칭한다.

유민화가는 1644년 몰락한 조의 남겨진 인물들, 즉 "유민(遺民)"으로, 산림에 은둔 자적하며 망국의 한과 비참함, 새로운 지배층이 된 만주족에 대한 분노와 울분 등을 다양한 주제와 개성적인 표현 양식으로 나타낸 화가들을 말한다. 주로 주탑, 석도, 홍인, 석계의 네 명의 승려화가를 칭하며, 사승(四僧), 사승화가라고도 한다. 또한 정통파의 복고주의와 대조되는 화풍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개성화파"로도 설명된다.

고증학과 대가들의 명작을 모방하여 그리는 방작(倣作)과 명작의 재해석을 중시하는 복고주의, 피마준과 미점준(미법산수) 등의 고법(古法) 중시 경향의, 사왕오운(四王吳惲)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정통파”와는 대조적으로, 고법과 방작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필묵과 다양한 소재의 개성적, 주관적 화풍의 소위 “창신파”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이들이 조직적으로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거나, 정통파에 저항하는 이분법적 의도를 지닌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명대 산수화의 개성적, 주관적 화풍을 회복시키고자 했으며, 또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처한 상황에서 비롯한 망국의 경험과 울분, 비참함 등의 감정이 새로운 착상과 구도, 자유분방한 필치와 기법, 자연에 대한 통찰력과 고답적 태도 등으로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유민화가들의 개성적, 주관적 화풍은 18세기 중국의 양저우팔괴해상화파 등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징

유민화가라 불리는 네 명의 화승은 모두 이전 왕조의 유민으로서, 왕조교체기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겪으며 경험한 망국의 한과 울분, 새로운 지배세력에 대한 분노, 현실의 비참함, 과거에 대한 강한 향수 등을 작품에 담아냈다. 화풍적으로는 구성과 주제, 필치 등의 측면에서 기상(奇想)적이고 독특하며, 즉각적이며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특징을 보인다.

사상적으로는 고증학보다는 심즉리양명학을 따랐으며, 산수 외에도 화초도, 화훼도, 초충도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대표 화가

네 명의 화승 중 주탑과 석도는 몰락한 명 황실의 후손이며, 홍인과 석계는 명이 멸망하고 청의 만주족이 들어오자 이에 반대하여 출가하였다.

· 주탑(朱耷, 팔대산인): 명조 왕족 출신으로 명의 멸망과 함께 승려가 되었다. 청에 대한 저항과 분노가 드러나는 서정적이면서도 냉소, 풍자, 반어법이 깃들어 있는 문인화를 많이 남겼으며, 독특한 발묵 선염법의 사용과 배경을 생략하고 대상만을 간결하게 표현한 절제된 구성의 화폭이 특징이다.

· 석도(石濤): 명조 왕족 출신으로 방작을 부정했으며, 망국의 한과 울분을 산수화로 표현했다. 그의 산수화는 실제 풍경에 근거를 두었으나, 이를 자유롭고 개성적으로 변형한 참신한 구도를 보인다. 황산파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나, 기하학적인 윤곽선 대신 먹과 담채의 조화와 변주를 통한 운율과 율동미를 표현했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개성적이고 감각적인 필묵과 밝은 색채 등은 청 중기의 양저우팔괴, 청 말기 해상화파 화가들에 영향을 주었다.

· 홍인(弘仁): 황산(荒山)에서 승려생활을 하며 소위 황산파라 일컬어지는 화풍을 주도했다. 준법을 생략한 윤곽선 위주의 각진 형태로 황산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 석계(石谿): 은거를 주제로 하는 그림에 전념하였으며, 표현주의적인 거친 필법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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