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혁명

녹색혁명

[ green revolution ]

녹색혁명은 20세기 후반, 전통적 농법이 아닌 새로운 기술인 품종개량, 수자원 공급시설 개발, 화학비료살충제 사용 등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농업생산량이 크게 증대된 일련의 과정 및 그 결과를 의미한다. 녹색혁명의 핵심은 새로운 기술의 적용으로 생산성을 크게 증대시키는 것에 있기 때문에, 유전학, 분자생물학, 식물생리학 등의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작물의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것을 2차 녹색혁명이라고도 부른다.

목차

녹색혁명의 기원

최초의 녹색혁명은 멕시코에서 시작되었다. 녹색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노먼 볼로그(Norman E. Borlaug)는 1944년부터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키가 작고 생산성이 높으며 수확량이 증대된 밀 품종을 개발하였다.1) 그는 셔틀육종(shuttle breeding)이라는 방법으로(그림 1) 고도가 2,000미터 이상 차이가 나는 멕시코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1년에 2회 세대를 진전시켜 연구속도를 가속하였으며, 짧고 강한 줄기를 가지는 반왜성(semi-dwarf)을 도입하여 증가된 물과 비료를 통해 더 많고 무거운 이삭을 가지게 된 밀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품종을 개량하였다. 이러한 새 품종의 밀을 통해 1960년대초 멕시코의 밀 생산량은 1944년 대비 6배까지 증가하였으며, 이 성과를 바탕으로 녹색혁명은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그림 1. 노먼 볼로그의 셔틀육종 (출처:한국식물학회)

또한, 1960년에 포드 재단(Ford Foundation)과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 및 필리핀 공화국 정부는 국제 쌀 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 IRRI)를 설립하였다. 1966년에 새로운 재배 품종인 IR8이 교배를 통해 개발되었다. IR8은 비료와 살충제의 사용을 요구했지만 전통 재배 품종보다 훨씬 높은 수확량을 나타내어, 필리핀의 연간 생산량은 크게 증가하였고 수출국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한국의 녹색혁명

한국의 녹색혁명은 1962년 식량부족을 극복하기 위해서 농촌진흥청이 설립된 이후 시작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 IRRI와의 국제협력체계가 갖추어지면서 인디카(열대지역적응) 벼의 단간직립(키가 작고 벼의 잎이 곧게 경사짐) 신초형을 이용한 인디카/자포니카벼 원연교잡 육종기술의 발전으로 1971년 최초로 우리나라 환경에 적응하는 단간직립 신초형 통일형 최초의 품종으로 "통일"의 육성에 성공하여 우리나라 녹색혁명의 기초가 되었다. 허문회 박사가 개발한 이 품종은 온대형 자포니카인 "Yukara"와 대만의 준단간 인디카품종인 "T(N)1"(Taiching Native 1)의 단교잡 F1을 준단간 다수성의 인디카 "IR8"과 원연종간 3원교잡(멀리 떨어진 3개 종 교잡)된 IR667조합(IR8//유카라/T(N)1)의 후대에서 선발 육성되었다.

신품종의 개발 및 보급은 벼의 재배 기술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통일형 품종은 자포니카 품종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일장감응성이 낮아 충분한 생육기간의 확보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성숙기에 고온을 요구하므로 기존 벼에 비해 빠른 시기에 이삭이 나올 수 있도록 빨리 모내기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재배기술이었다. 이를 위해 폴리에틸렌 비닐을 이용한 비닐보온절충못자리가 도입되어 못자리 설치와 모내기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었다. 또한, 화학비료의 생산 및 사용량 증가와 더불어 다수확품종의 밀식으로 인한 병해충 방제기술도 발전하였다.

이러한 벼 신품종 및 새로운 재배기술들이 농가에 신속히 보급될 수 있었던 것은 연구개발과 기술보급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농촌진흥청을 포함하는 구조적 체계의 확립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녹색혁명은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농업의 인프라 구축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며, 구시대의 농업과 확연히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통일벼의 보급 이후에 1975년에는 생산량이 466톤에 도달하여 자급율 100%를 돌파하였다. 1962년의 생산량인 301만톤 정도와 비교하여 1.5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1977년에는 농가평균 수량성이 4.94톤/ha으로 세계 최고 수량성을 기록하면서 총 생산량이 6,006천 톤에 달함으로써 정부는 녹색혁명 성취를 선언하였다.(표 1)2)

.

표 1. 녹색혁명 이전과 이후의 한국의 쌀 및 양곡수급 상황. (출처:김석동, 문헌팔, 김제규 등 (2012) 한국의 녹색혁명(The green revolution in Korea). KDI 국제정책대학원)

참고문헌

1. Phillips RL (2013) Biographical Memoirs - Norman E. Borlaug.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 김석동, 문헌팔, 김제규 등 (2012) 한국의 녹색혁명(The green revolution in Korea). KDI 국제정책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