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

장동

[ nutation ]

장동(nutation)은 지구 자전축이 황도의 극축과 이루는 극각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운동이다. 지구의 자전축은 황도의 북극에 대하여 23.44도 가량 기울어져 있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적도가 자전 때문에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달과 태양의 기조력에 의한 돌림힘을 받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이 황도의 북극에 대하여 방위각 방향으로 달라지는 운동을 세차운동(precession)이라고 하고 극방향으로, 마치 고개를끄덕거리듯하는 운동을 장동(nutation)이라고 한다(그림 1). nutation은 고개를 끄덕인다는 의미의 라틴어 'nutare'에서 유래했다.

그림 1. 지구의 자전(rotation 또는 spin), 세차(precession), 장동(nutation)의 개략적인 모습. 자전(R)은 항성에 대하여 23시간 56분의 주기로 일어나고, 세차(P)는 2만6천년에 1회전을 한다. 장동(N)은 자전축이 극방향으로 끄덕이는 운동을 뜻한다.()

목차

자전축의 극방향 운동

세차운동과 마찬가지로 장동은 달과 태양의 기조력에 의한 돌림힘 때문에 생긴다.

달의 공전 궤도(백도)는 지구의 적도면과 28.5도를 이루어 지구의 공전 궤도인 황도와는 5.157도의 각을이룬다. 실제로 달의 공전 궤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황도면에 대하여 18.6년을 주기로 세차 운동을 한다. 백도면과 황도면의 교선이 황도면에서 태양의 겉보기 운동과 반대 방향으로 돈다. 이와같은 세차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태양이 지구-달의 2체 시스템에 돌림힘을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장동 운동은 황도면과 약 5도 기울어진 채 18.6년을 주기로 달이 지구의 자전축을 흔들기 때문에 일어나는 장동이다. 대략적인 계산에 따르면 태양은 반년마다 경도와 위도에 대하여 -1.3각초와 0.55각초의 장동을 일으키고 달은 18.6년을 주기로 경도와 위도 방향에 대하여 -17각초와 9.2각초의 장동을 일으킨다.

세차 운동과 함께 장동 운동은 지구의 내부 구조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하게 쓰인다. 핵과 맨틀의 외부 힘에 의하여 변형되는 정도와 점성과 같은 중요한 물리량이 지구 자전축의 운동에 영향을 준다. 지구 자전축의 운동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것은 위치 천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국제천문연맹에서 장동의 각 주기 성분값을 정하고 있다., J2000.0 장동상수는 9.2052331이다. 장동에 의하여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가 달라지면 태양 복사 에너지의 입사량이 지역마다 달라져 기후 변화의 한 가지 요인이 된다.

장동 연구의 역사

지구 자전축의 장동은 영국의 신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브래들리(James Bradley, 1693-1762)가 발견하였다. 그는 핼리의 뒤를 이어 1742년에 Astronomer Royal로 봉직한 천문학자이다. 18세기 전반기는 지동설을 확립하기 위하여 항성의 연주 시차를 측정하기 위하여 여러 천문학자들이 경쟁적인 노력을 기울이던 시기였다. 연주 시차의 발견은 결국 다음 세기인 1838년에 베셀이 수행한 61 Cyg의 관측에서 이루어졌다.

브래들리는 고정된 망원경을 사용하여 별들의 정밀한 적위값 측정을 꾸준히 수행하였다. 그는 의도했던 항성의 연주 시차를 측정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지만, 6개월마다 별들의 겉보기 위치가 달라진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것이 지구의 공전 운동 때문에 일어나는 광행차 현상임을 밝히고 1729년 1월에 이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는 관측을 계속하여 별의 겉보기 위치가 추가로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것이 달에 의한 지구 자전축의 장동임을 짐작하고 18.6년의 주기성을 가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마침내 20년 이상에 걸친 자료를 획득하여 이 사실을 확인한 후 마침내 1748년 2월에 '이 기간 동안 저자의 관측 자료에 따르면 하지 경선 근처의 항성들의 적위가 세차 운동에 의한 변화를 고려했음에도 9각초에서 10각초 범위의 변화가 있었다.' 고 보고했다(Phil. Tran. 1748, 45, 1-43). 브래들리는 자신이 발견한 장동의 원인이 달에 있음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지만 수학적인 온전한 설명은 뒤에 달랑베르(d'Alembert)와 오일러의 연구에서 이루어졌다. 1749년에 달랑베르는 'Recherches sur la pr6cession des 6quinoxes et sur la nutation de l'axe de la Terre',라는 제목으로 세차와 장동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세차와 장동에 의하여 미세하게 달라지는 지구의 회전 방향은 주로 초장기선간섭계(VLBI, 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를 써서 측정한다.또한 수십개의 인공 위성을 활용하여 지구의 위치 정보를 파악하는 지피에스(global positioning system GPS) 혹은 범지구적항법(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 GNSS)과 같은 위성항법에서도 짧은 주기의 장동 운동 정보를 획득한다.

그림 2. 지구 자전축의 경도와 황도면 경사에 대한 장동의 시간에 따른 변화. 지구 자전축의 변화를 평균 세차 운동을 빼면 경도와 황도면 경사의 칭동(libration) 패턴을 나타내며 18.6년을 주기로 가장 크게 나타난다.(출처: 이희원/한국천문학회)

장동 운동의 물리학

장동 운동이 일어나는 물리적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찰이 매우 작은 팽이 혹은 자이로스코프의 작동 원리를 살펴 보는 것이 유용하다. 빠르게 회전하는 팽이를 기울인 채로 손가락 위에 올려 놓으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회전을 계속한다. 마찰이 없는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에너지가 보존된다. 팽이의 무게 중심이 내려 오면 줄어든 위치 에너지만큼 운동 에너지가 증가해야 하므로 팽이의 회전이 커져야 한다. 회전은 팽이의 자전 뿐만 아니라 팽이의 자전축이 달라지는 운동까지 포함한다. 커진 회전 운동 에너지는 결국 원래의 위치를 회복하게 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요요가 내려가면서 회전이 빨라지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올라오면서 회전이 느려지는 것과 유사하다. 팽이가 초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에너지에 의하여 두 높이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운동이 끄덕거림 혹은 장동에 해당한다. 초기 조건에 따라 팽이가 가질 수 있는 위치 에너지의 범위가 존재하는 것은 마치 태양계에서 천체의 초기 조건에 따라 근일점 거리와 원일점 거리가 결정되고 천체의 위치에너지가 이 두 거리의 위치 에너지 사이를 오가는 상황과 유사하다.

마찰의 영향을 받는 일반적인 팽이의 회전에서 장동을 관측하기는 몹시 어렵다. 약간의 마찰이 있어도 장동 운동이 감쇠되고 팽이의 회전축이 연직 방향에 대하여 일정하게 되는 세차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세차가 일정한 운동은 연직 방향의 일정한 힘에 의하여 유지될 수 있는 운동 가운데 특별한 경우이다.

팽이와 같이 크기가 있으며 형태가 고정된 이상적인 물체를 강체(rigid body)라고 부른다. 강체의 회전은 역학의 중요한 주제이며 오일러는 강체 회전을 다루는 편리한 수학적인 방법을 제시하였으며 흔히 오일러 각이라고 부른다. 오일러 각은 세개의 각으로 이루어지며 관성 좌표계와 회전하는 강체 좌표계 사이의 좌표변환을 결정한다. 운동 방정식은 관성 좌표계에서 뉴턴의 운동 방정식을 사용하되 강체의 회전 관성은 강체의 정지 좌표계에서 계산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에 강체의 회전은 이 두 좌표계 사이의 좌표 변환이 필요하다.

그림 3. 오일러 각 Φ, θ, Ψ. 관성 좌표계와 회전 좌표계 사이의 좌표 변환은 세 오일러 각으로 나타낼 수 있다.(출처: 이희원/한국천문학회)

오일러 각은 강체의 자전을 나타내는 각@@NAMATH_INLINE@@\psi@@NAMATH_INLINE@@, 세차를 나타내는 각 @@NAMATH_INLINE@@\phi@@NAMATH_INLINE@@와 장동을 나타내는 각@@NAMATH_INLINE@@\theta@@NAMATH_INLINE@@로 이루어지며 그림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관성 좌표계의 @@NAMATH_INLINE@@z@@NAMATH_INLINE@@축에 대하여 @@NAMATH_INLINE@@\phi@@NAMATH_INLINE@@ 회전, 새로운 @@NAMATH_INLINE@@x'@@NAMATH_INLINE@@축에 대하여 @@NAMATH_INLINE@@\theta@@NAMATH_INLINE@@ 회전 후에 다시 새로운 @@NAMATH_INLINE@@z@@NAMATH_INLINE@@축에 대하여 @@NAMATH_INLINE@@\psi@@NAMATH_INLINE@@만큼 회전하여 강체 좌표계에 이른다. 축대칭이 있는 팽이의 회전 운동에서 @@NAMATH_INLINE@@\psi@@NAMATH_INLINE@@와 @@NAMATH_INLINE@@\phi@@NAMATH_INLINE@@의 켤레 운동량@@NAMATH_INLINE@@P_\psi, P_\phi@@NAMATH_INLINE@@과 에너지@@NAMATH_INLINE@@E@@NAMATH_INLINE@@가 보존된다. 이들 보존량과 오일러 각을 써서 팽이의 회전을 @@NAMATH_INLINE@@\theta@@NAMATH_INLINE@@에 대하여 @@NAMATH_DISPLAY@@\begin{equation} E= {1\over2}I_1\dot\theta^2+V_{eff}(\theta) ={1\over2}I_1\dot\theta^2+{(P_\phi-P_\psi\cos\theta)^2\over 2I_1\sin^2\theta}+Mgl \sin\theta \end{equation}@@NAMATH_DISPLAY@@ 의 형태로 나타낼 수 있다. 여기에서 @@NAMATH_INLINE@@I_1@@NAMATH_INLINE@@은 대칭축에 수직인 축에 대한 회전 관성이고 @@NAMATH_INLINE@@l@@NAMATH_INLINE@@은 팽이의 끝에서 질량 중심까지 거리이고 @@NAMATH_INLINE@@M@@NAMATH_INLINE@@은 팽이의 질량이다. 이 때에 유효 퍼텐셜 @@NAMATH_INLINE@@V_{eff}(\theta)@@NAMATH_INLINE@@와 초기 조건에 의하여 팽이의 회전이 규정되고 @@NAMATH_INLINE@@V_{eff}

실제 지구는 강체가 아니고 유동성을 갖는 맨틀과 성질이 다른 두 가지 핵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시스템이다. 따라서 지구의 회전은 강체 회전보다 많이 복잡하고 지구의 공전 궤도나 달의 공전 궤도가 원에서 벗어나며 기후나 생태계의 변화와 같은 요소까지도 지구 자전축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