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

직녀성

[ Vega , 織女星 ]

직녀성(織女星)은 중국에서 비롯한 견우직녀 설화에 등장하여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별 이름이다. 직녀(織女)는 국제 표준 별자리인 거문고자리를 이루는 별들 중에서 ζ Lyr, ε2 Lyr, α Lyr의 세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이다. 이 세 별 중에서 가운뎃별인 α Lyr를 특히 직녀성 또는 직녀별로 부른다. 직녀성 α Lyr은 거문고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며 2016년 국제천문연맹 별이름 작업반(Working Group on Star Names)에서 베가(Vega)라는 이름으로 표준화하였다. 그림 1은 고대 성도에 나타난 직녀성을 볼 수 있다.

직녀성의 적경은 2000년 기준으로 α=18h36m56.3s이고 적위는 δ=+38°47′01.3″이다. 이 별의 겉보기등급은 +0.026등급이고, 분광형은 A0이고 광도등급은 주계열성이다. 히파르쿠스 천문 관측 위성으로 측정한 연주시차는 130.23±0.36 mas이고, 따라서 거리는 25.04±0.07광년 즉 7.68±0.02파섹이다. 따라서 절대 안시등급은 MV =+0.582이다.

그림 1. 조선 초기에 간행된 보천가의 성도 부분에 나타난 견우성과 직녀성의 위치. 河鼓3과 같이 뒤에 숫자가 나오는 것은 그 성수를 구성하는 별들의 총 개수를 나타낸다. 붉은 점과 글자로 주요 별에 대해 현대 별이름을 표시하였다.(출처: )

목차

직녀성의 천문학적 관측

중성수소 발머 계열 흡수선 관측

직녀성 즉 베가는 1850년에 사진 관측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태양을 제외한 최초의 항성 사진 관측이었다. 1872년 드레이퍼(Henry Draper)는 최로로 직녀성의 스펙트럼을 사진으로 촬영하였다. 그 전에 이미 태양의 스펙트럼에서 그러한 흡수선이 존재함이 알려져 있었으나, 항성에도 그러한 강한 흡수선이 존재함을 최초로 보인 사건이었다. 1879년에 허긴스(William Huggins)는 직녀성 및 그것과 비슷한 별들의 분광 사진을 사용하여 12개의 매우 뚜렷한 흡수선을 동정하였는데, 이 흡수선들은 나중에 중성수소에 의해 생기는 발머계열(Balmer series) 흡수선임이 밝혀졌다.

측광계의 기준별

그림 2. 직녀성을 적외선 빛으로 관측한 모습.(출처: )

옛날에는, 별의 밝기를 등급으로 환산할 때, 직녀성을 표준성으로 삼아, 여러 파장대에서 직녀성의 등급을 0이라고 정의하였다. 최근까지도 절대 사진등급을 눈금조정할 때 직녀성을 기준선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도입된 UBV측광계에서는 A0형 주계열별 12개를 정해서 그 평균 등급을 U-B=B-V=0 이 되도록 정의했다. 그러나 현재는 특정한 수치로 주어지는 플럭스로 겉보기등급 0을 잡는다.

연주시차와 거리

직녀성은 또한 최초로 연주시차로 거리가 측정된 별들 가운데 하나였다. 스트루베(Friedrich Georg Wilhelm von Struve)는 직녀성의 연주시차가 0.125″로 측정되었다고 발표하였으며, 이는 최근 히파르코스(Hipparcos) 천문 위성의 관측 결과인 0.129″와 가까운 값이다.

별의 반지름과 자전속도

간섭계 관측으로 처음으로 직녀성의 반지름이 태양의 2.73±0.01배로 측정되었다. 이 값은 항성진화모형이 예측하는 값보다 12% 큼이 밝혀졌다. 이 차이는 직녀성이 빠르게 회전하고 그 자전축이 시선방향과 거의 나란하다면 설명이 된다고 추론되었다., 2005~2006년에 아우프덴버그(Jason Paul Aufdenberg) 등에 의해 실시된 관측에 의해 이 추론이 확인되었다. 윤진미(Jinmi Yoon) 등이 2010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직녀성의 자전축은 시선방향과 겨우 5도 정도 기울어져 있고 그 자전속도는 적도에서 236.2±3.7 km@@NAMATH_INLINE@@\,@@NAMATH_INLINE@@s-1로 추산되었는데, 이것은 원심력에 의해 별이 부서지는 자전속도의 87.6%에 해당하는 매우 빠른 속도이며, 이러한 빠른 자전 덕분에 적도 반지름이 2.818±0.013배, 극반지름이 2.362±0.012배로 적도 반지름이 극반지름보다 19%나 큰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빠른 자전에 의해 극에서의 표면 중력이 적도에서의 표면 중력이 크게 되고, 이는 표면 온도의 차이를 가져온다. 이것을 폰 자이펠 효과(von Zeipel effect)라고 하며, 2006년에 피터슨(Deane Peterson) 등에 의해 실제로 직녀성의 극에서는 표면 온도가 10,000K인데 비해, 적도에서는 7,600K로 관측되었다. 그래서 직녀성을 극에서 관측한다면 별의 밝기가 절반으로 관측 될 것이다. 이러한 효과를 중력 감광(gravity darkening) 이라고 한다.

적외선 관측 및 먼지 파편 원반(debris disk)

적외선 천문 위성 즉 IRAS의 관측 결과, 직녀성은 일반적인 별보다 적외선을 과도하게 많이 방출하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직녀성 둘레에 먼지티끌로 이루어진 원반이 존재함을 뜻한다. 그 후에 이루어진 여러 가지 정밀 관측 결과, 특히 미국 아리조나 대학교의 수(Kate Su) 등이 2005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스피처(Spitzer) 적외선 천문위성으로 직녀성의 고해상도 적외선 영상을 얻어본 결과, 24μm 파장대에서는 330천문단위, 70μm에서는 543천문단위, 160μm에서는 815천문단위만큼 적외선 초과가 나타났다. 그 원반은 1-50μm 크기의 먼지 입자들로 되어 있어 그 먼지 입자의 총 질량은 지구 질량의 0.3% 정도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먼지 입자가 생기려면 태양계의 카이퍼벨트에 해당하는 소행성 개수가 필요하였으며, 따라서 직녀성에는 원시행성원반(protoplanetary disk)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파편원반(debris disk)이 존재하여 여기서 먼지가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홀란드(Wayne S. Holland) 등의 1998년도 논문에 따르면, 직녀성의 원반에는 원시 행성이 존재한다는 관측 결과가 보고되기도 하였으나, 최근 피에투(Vincent Pietu) 등의 2011년 논문이나, 휴즈(Meredith A. Hughes) 등의 2012년 논문, 그리고 시브써프(Bruce Sibthorpe) 등이 허셜 망원경을 사용하여 2010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 원반에는 덩어리가 없이 매끈하고 대칭적인 모양임이 밝혀져서 목성형 행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크기가 더욱 작은 지구형 행성이 존재할 가능성은 아직도 천문학적인 확인이 있어야할 것이다.

중국의 견우직녀 설화

견우와 직녀 설화는 중국의 4대 설화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견우성과 직녀성이 나타난 최초의 중국 문헌은 시경(詩經)의 소아편(小雅) 소민지십(小旻之什)에 대동(大東)이라는 시이다. 문선(文選)에 수록되어 전해오는 한대(漢代)의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나, 위진남북조(3~6세기)시대의 형초세시기나 소설 잡기류에 칠석행사가 거론된다. 특히 직녀는 길쌈을 잘 하였으므로 당시 여인들이 직녀(성)에게 길쌈을 잘 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그것을 걸교(乞巧)라고 하였다.

하늘에는 은하수(維天有漢)
살펴보니 빛이 난다(監亦有光)
베틀에 앉은 직녀여(跂彼織女)
종일토록 일곱 자리 옮기어 앉네(終日七襄).
일곱 번을 옮겨 앉아 베를 짜도(雖則七襄)
무늬 놓은 비단을 짜지도 못한다(不成報章).
밝은 저 견우성(彼牽牛)
수레를 끌어 주려하지 않는구나(不以服箱).
새벽에 동쪽에 계명성 뜨고(東有啓明)
저녁에는 서쪽에 장경성이 돋는데(西有長庚).
필성(畢星)에는 토끼 그물 있어(有捄天畢)
줄지어 펼쳐져 있구나(載施之行).
설화 줄거리

직녀는 천제(天帝)의 손녀로 길쌈을 잘하고 부지런했으므로 매우 사랑 받았는데, 천제의 배려로 은하수 건너편에 사는 견우라는 목동과 혼인하게 했다. 그런데 견우와 직녀는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게을러져서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소홀히 하였다. 천제는 노하여 이들을 은하수 양쪽에 떨어져 살게 하고 1년에 단 한 번 음력 7월 7일에만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날을 칠석날이라고 하는데, 은하수 강물이 불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자, 이를 딱하게 여긴 까마귀와 까치들이 오작교를 만들어 주었고, 견우와 직녀는 감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날은 까마귀와 까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헤어져야 할 때 이들이 흘린 눈물이 비가 되어 땅위에 내렸다. 이것을 칠석우(七夕雨)라고 한다.(陳久金, 2005, 中國星座神話(台灣書房出版有限公司))

한국의 견우직녀설화

견우직녀 설화의 전래

한국사에 견우직녀 설화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나 그 시점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기원후 408년에 조영된 덕흥리 고분 안에 그린 천상 세계 벽화에 주요 별자리들과 함께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는 견우와 직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서 최소한 그 시기에는 이미 견우직녀 설화가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벽화에는 견우는 소를 끌고 있고 직녀는 발치에 검둥개를 데리고 있다. 이 검둥개는 일본에 전하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에 등장하고 있다.

고려시대

고려사 권38 공민왕 2년(1353년)조에 '칠석에 왕과 공주가 궁정에서 견우와 직녀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칠석제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칠석우(七夕雨)라는 시나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칠석(七夕) 등의 시가 남아 있다.

은하수 가을철에 들어선 오작교의 신선들, 해마다 좋은 인연이기도 하다.(銀河秋畔鵲橋仙, 每年年好因緣.)
지친 나그네는 어찌하여 이날 오히려 이별 자리를 받게 되었는가?(倦客胡爲此日却離筵.)
천 리 고향은 이제 더 멀어져, 간장을 끊어질 듯하고 눈은 뚫어질 듯하네.(千里故鄕今更遠, 腸正斷, 眼空穿.)
추운 밤 초가 주막에 잠 못 이루고, 호롱불 하나 빗소리 들리는 언저리에서,(夜寒茅店不成眠, 一燈前, 雨聲邊.)
천제(天帝)의 손녀에게 말하노니 새로운 기술은 누구에게 전하려하오?(寄語天孫新巧欲誰傳.)
게으르고 재주 없는 사람은 단지 한가로이 살면서, 열 길을 찾아 숲과 냇물 사이에 누워 지내기나 하려오.(懶拙只宜閑處著, 尋舊路, 臥林泉.)
- 이제현의 익재난고(益齋亂稿) 제10권, '강신자(江神子)-칠석날 밤에 비를 무릅쓰고 구점(九店)에 당도하다.'(고전원문DB/ 고전번역원)
칠석과 관련된 민속 놀이 및 축제

대전광역시 중구 부사동의 칠석놀이, 경상남도 김해군 부서(府西)의 알촌과 하계(荷溪)마을의 칠석놀이, 충청남도 금산군 진악산의 송계놀이, 충청남도 당진군 송산면 부곡리의 칠석 풍년제, 전라북도 정읍의 솔불놀이, 전라남도 여수의 진세놀이 등이 칠석놀이로 보고되어 있다. 이 중 대전광역이 부사동의 칠석놀이는 백제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백제시대 부사동은 아랫말과 윗말로 나뉘어 다툼이 있었다. 윗말의 부용(芙蓉)이라는 처자와 아랫말의 사득(沙得)이란 처자는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신라가 백제를 침공하자 사득은 백제군으로 징집되어 전사한다. 부용은 날마다 보문산 선바위에 올라 사득을 기다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죽는다. 몇 해 후, 마을에 가뭄이 들어 샘물이 마른다. 윗말에 사는 한 노인의 꿈에 부용이 나타나 사득과 영혼 결혼을 시켜주면 가뭄을 그치게 해주겠다고 한다. 아랫말에 사는 한 노인의 꿈에는 사득이 나타나 같은 말을 전한다. 이에 아랫말과 윗말 사람들은 화해하고 칠석날 함께 모여 샘에서 고사를 지낸 후 두 영혼을 혼인시켜준다. 그 결과 말랐던 샘물이 펑펑 솟았다. 사람들은 그 샘의 이름을 부용과 사득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부사샘이라고 불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일본의 견우직녀 설화

일본에서는 칠석을 타나바타라고 하고 이날 마츠리를 개최하며 즐긴다. 나라(奈良) 시대에 전해진 중국의 칠석(七夕) 풍습과, 원래 일본에 있었던, 강가에서 길쌈을 하며 신을 맞이라는 타나바타 쯔메(棚機津女) 설화가 습합되어 형성된 설화로 본다. 타나바타의 어원은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나오며, 만엽집(萬葉集) 권10 春雜歌에도 등장한다. 당초에는 여성들이 길쌈 솜씨와 자수 솜씨가 좋아지기를 견우성과 직녀성에 빌며 아름다운 실과 금은으로 만든 바늘 등을 바치며 제사를 지내던 행사였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종이에 소원을 적어 나무에 매다는 풍습이 생겼고, 기원의 대상도 길쌈이나 자수 뿐만이 아니라 붓글씨 쓰기 등으로 확대되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다양한 소원을 종이에 적어 대나무에 매달아 세우는 마츠리가 되었다. 그 명칭도 시치세키(七夕)으로 부르거나 호시마츠리(星祭)라고 부른다. 타나바타 마츠리는 에도시대에는 5대 명절 가운데 하나로 성행하였으나 메이지(明治) 6년에 공식 폐지된 이후로 민중들 사이에서도 거의 사라지다시피하였다.(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