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 5세

라마 5세

[ Rama V ]

요약 타이 방콕 왕조의 제 5대 왕(재위 1868~1910).
라마 5세와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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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사망 1853.9.20 ~ 1910.10.23
국적/왕조 타이
재위기간 1868~1910
본명 Phrachunlachomklao
별칭 출랄롱코른
활동분야 정치

라마 4세의 아홉 번째 아들이자 왕비의 첫째 아들로 ‘쭐라롱껀 ’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부왕의 적극적인 서양 교육의 장려로, 어릴 때부터 서구 선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15세 때 부왕이 서거하여 왕위에 올랐지만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수리야웡(Somdet Suriyawong, 재임 1868~1873)이 5년간 섭정하였다. 섭정 기간 동안 그는 세계 도처를 여행하며 서구의 문물과 교육제도 등에 견문을 넓히고, 주변 국가와의 정치적 우의를 다졌다.

시암으로 돌아온 후 정치·경제·사회 개혁에 주력하였다. 20개의 소 왕국으로 분산되었던 왕국을 중앙집권 체제로 변화시키고, 서구와 같은 근대화된 내각 제도를 도입하는 등 행정조직을 개편하였으며 군대는 서양식 무기와 제도를 갖출 수 있도록 하였다. 바트(Baht) 화를 발행하고, 토지개혁을 실시하였으며 조세를 국가가 직접 징수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지방 귀족들의 탈세를 방지하였다. 또한 국민의 교육을 장려하고, 시암 최초의 병원과 의료 교육 시설을 설립하는 등의 노력과 전통적 노예 제도와 부복(prostration)을 철폐하고, 대외적으로는 외국의 치외법권의 철폐 등 불평등조약의 개정에 노력하여 국권회복과 보존에 힘썼다.

서구의 선진 문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시암의 근대화에 성공하였지만, 식민화를 노리는 제국주의는 철저히 배격하였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시암 내 철도 부설을 약속하였지만, 이 사업으로 인한 시암의 주권 약화를 우려하여 거절하였다. 대신 영국 단독 사업이 아닌 유럽의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철도부설 프로젝트를 받아들임으로써 주권을 잃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취하는 균형외교를 펼쳤다.

그는 근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타이 근대사의 기점을 이룩한 왕으로 칭송받는다.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한 쭐랄롱껀 왕립대학은 태국 내에서 최고의 명문대학이며, 그의 직계 후손들은 현재도 타이 사회 곳곳에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서거한 10월 23일은 현재까지 쭐랄롱껀의 날(Chularlongkorn Day)로 기념하고 있다.

참조항목

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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