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신재효(申在孝)의 <춘향가(春香歌)> 남창(男唱) 가운데 도령이 부른 ‘사랑가’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 사랑 사랑이야. 연분이라 하는 것은 삼생(三生)의 정함이오, 사랑이라 하는 것은 칠정(七情)의 중함이라. 월로(月老)의 정한 배필(配匹) 홍승(紅繩)으로 맺었으며, 요지(瑤池)의 좋은 중매 청조(靑鳥)가 날았구나.

‘사랑’이란 희로애락 애오욕(喜怒愛樂愛惡慾)이란 감정 가운데 하나이며, 부부란 월하노인(月下老人)이 붉은 줄로 발을 묶고, 청조가 중매한 특별한 인연이라 노래한 것이다.

‘사랑’은 ‘이성에게 끌려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이 주된 뜻이라 하겠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랑은 별로 행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으로 살았고, 과거의 사랑은 ‘사랑=성애(性愛)’란 에로스(eros)적 사랑이었다. 고소설이나 설화가 다 그러하다.

‘사랑’은 본래 사랑 애(愛)자의 ‘애(愛)’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 사(思), 헤아릴 량(量)’의 ‘사량’이 변한 말로, ‘생각’에서 ‘애정’의 의미로 바뀌었다. 본래 애정(愛情)의 속성이 자꾸만 생각하게 하고, 그러노라면 그리워지고, 또 그렇게 되면 사랑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사랑’이란 말은 자연스러운 의미변화를 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말에는 애정을 나타내는 말에 ‘사랑’이란 말 외에 ‘괴다’와 ‘imagefont다’가 있었다. ‘괴다’는 ‘괼 총(寵)’에서 알 수 있듯 남녀의 사랑을 의미한다. 고려속요 「정과정(鄭瓜亭)」 가운데 “아소, 님하 도람드르샤 괴오쇼셔”나, 송강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 가운데 “나 imagefont나 졈어 잇고 님 imagefont나 날 괴시니”가 이러한 예다.

앞의 노래는 님이 마음을 돌려 사랑해 달라는 것이고, 뒤의 노래는 내가 아직 젊고 님이 날 사랑하시니라는 뜻의 노래다. 이렇게 남녀의 애정은 ‘괴다’라 했다. ‘imagefont다’는 이와는 달리 남녀의 애정 아닌, 넓은 의미의 사랑을 의미했다. “다imagefont 애(愛)「훈몽자회」”, “그듸imagefontimagefontimagefontimagefont(憐君)「두시언해」”과 같은 것이 그 예다.

‘사랑’이란 말과 합성된 말 가운데 ‘사랑’이 앞에 오는 주요한 말에 ‘사랑가, 사랑땜, 사랑싸움, 사랑앓이’ 같은 말이 있다. ‘사랑가’는 앞에서 본 <춘향가>의 ‘사랑가’처럼 사랑을 주제로 한 가요거나, 가사(歌辭)를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사랑 노래’라는 말과 구별되는, 서양의 ‘아리아’처럼 우리 문화를 반영하는 문화어(文化語)다.

‘사랑니’란 재미있는 말이다. 이는 어금니가 다 난 뒤 성년기(成年期)에 입의 맨 구석에 새로 나는 어금니다. 사춘기 이후 사랑할 때쯤 이 이가 난다하여 이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이를 일본어로는 ‘어버이 모르는 이(親知らず齒), 지혜치(知慧齒), 지치(知齒)’라 하여 우리와 명명을 달리한다. 영어의 ‘a wisdom teeth’는 일본어와 발상을 같이 한다. ‘사랑땜’은 ‘새로 가지게 된 것에 얼마 동안 사랑을 쏟는 일’을 뜻한다. 사람들은 흔히 한 동안 새로운 것에 애착을 갖는다. 이런 심정이 반영된 말이 ‘사랑땜’이다. 이러한 말은 일어나 영어에는 있는 것 같지 않다.

‘사랑싸움’은 사랑으로 인해 악의 없이 벌이는 싸움이다. 따라서 이는 주로 연인이나 젊은 부부 사이에 벌어진다. 『춘향전』에도 춘향과 도령이 이별하게 되어 춘향이 도령에게 앙탈을 할 때, 그 전말을 모르는 춘향 모가 “애고, 저것들 사랑싸움이 났구나. 어, 참 아니꼽다. 눈구석 쌍가래톳 설 일 많이 볼네.”(『열녀춘향수절가』)라 하고 있다. ‘사랑앓이’는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로, 상사병(相思病)에 해당한 말이다. 일어의 ‘고이야미(戀やみ)’, 영어의 ‘lovesick’과 같은 말이다.

‘사랑’이 뒤에 붙는 복합어에는 ‘짝사랑, 외짝사랑, 참사랑, 풋사랑’ 같은 말이 있다. ‘짝사랑’은 ‘외짝사랑’과 같은 뜻의 말이다. 이는 “짝사랑에 외기러기”란 속담의 ‘짝사랑’이다. 사랑은 서로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속담은 혼자서만 사랑하여서는 아무 소용없다는 뜻을 나타낸다. ‘참사랑’은 물론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이고, ‘첫사랑’은 처음으로 하는 사랑이다. 일본어도 ‘하쓰고이(初戀)’라 하여 우리말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영어는 ‘one’s first love’라 하여 다소 산문적이다.

‘풋사랑’은 ‘어려서 깊이를 모르는 사랑’, 또는 ‘정이 덜 들고 안정성이 없는 들뜬 사랑’을 말한다. 현진건의 『적도』에는 “애송이 남녀는 풋사랑의 쓰라린 작별에 울고 또 울었다.”는 예를 보여 준다. ‘풋사랑’은 일본어로는 ‘가리소메노고이(假の初戀), 아와이고이(淡い戀), 아다나사케(徒情)’, 영어로는 ‘transient love, calf love, puppy love’라 하여 우리말과 그 표현에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영어에서 ‘송아지 사랑, 강아지 사랑’이라 하는 것은 우리 정서와는 거리가 느껴진다. 들뜬 사랑은 따로 ‘fickle love’라 한다.

‘사랑’은 이성간의 애정 외에 ‘부모나 윗사람, 자식이나 아랫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남을 돕고 이해하려는 마음,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도 의미한다. 이들은 근대(近代)에 접어들어 서양의 영향을 받아 그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우리는 ‘내리 사랑’이라 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쉬우나, 그 반대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리고 요사이는 “엄마 사랑해!”라고 거침없이 말하지만 지난날 이는 무례하고 불경스러운 말이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恭敬)하는 것이다. 공경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일본의 “위는 아래를 사랑하고, 아래는 위를 공경한다(上は下を慈み, 下は上を敬う)”는 속담도 이런 자세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애정(愛情)을 나타내는 ‘은애(恩愛), 총애(寵愛), 은정(恩情), 은혜(恩惠), 은의(恩誼)’와 같은 말은 남자가 여자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귀여워하고 돌보아 주는 일방 통행적 감정 표현의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부부나 자식에게도 드러내 놓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불출(不出) 소리를 들었다. 일본사회에서도 이 말 하기를 꺼린다. 한일 언어문화는 애정표현에 매우 소극적이고 보수적이었다.

현대의 인생(人生)은 적극적인 사랑으로 운행되어야 한다. 사랑의 방법은 『고린도전서』에 잘 나타나 있다. ―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