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규엽

채규엽

[ 蔡奎燁 ]

요약 성악가·작사가(유행가). 함경도 함흥(咸興) 출생. 일본 중앙음악학교(中央音樂學校) 졸업. 콜럼비아사 전속가수. 일본 예명은 장곡천일랑(長谷川一郞 하세가와 이치로)·좌백주이(佐伯周二 사하쿠 슈지).
출생 - 사망 1906년 ~ 1949년
채규엽

원산(元山)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모기윤(毛麒允) 선생에게 노래공부를 시작했고, 독일인 모이기르크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1926년 오사카(大阪)음악학교의 연구과(研究科)에서 공부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사 주최 신인연주회에서 1등으로 입상했으며, 1928년 5월 10일 YMCA강당에서 독창회를 열었다. 토월회(土月會)와 취성좌(聚星座)의 막간가수(幕間歌手)로 활약했으며, 후에 콜럼비아사의 전속가수로 있으면서 많은 유행가를 음반에 취입하였다.

1928년 일본유학에서 귀국해 1년 동안 근화여학교(槿花女學校)의 음악교사로 근무했고, 1929년에는 경성여자미술학교의 음악교사로 이직(移職)하였다. 1929년부터 콜럼비아음반에 취입하기 시작했고, 콜럼비아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때는 1932년 1월이다.

1930년 서울에 왔을 때 우연히 콜럼비아회사의 파티에 참석해 나니와부시(浪花節)를 불렀을 때 콜럼비아의 경성 지사장인 핸드 포드가 그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유행가를 녹음하도록 권유했다. 그의 데뷔곡은 자신이 작사·작곡한 "유랑인의 노래"였다. 1930년 "봄노래를 부르자"와 "유랑인의 노래"를 첫 출반한 이후 20년 동안 그의 인기는 지속됐다. 1935년 매일신보에서 애독자 투표로 남자 가수 베스트 5를 선정해 발표했을 때 당당히 1위를 차지했고, 또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가수(職業歌手)로 유명하다.

일본어에 능통했던 그는 동경 본사로부터 채규엽이 꼭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193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하세가와 이치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가수활동을 전개했다. 1933년 가을 3년 만에 귀국하여 각지에서 귀향환영음악회를 가졌다. 그해 10월 20일 서울의 공회당에서 음악회가 열렸을 때에는 게스트로 콜럼비아사의 김선초·임헌익·김복순·안일파·김선영을 맞이해 "홍등야곡"(紅燈夜曲)·"봄노래"·"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님 자취 찾아서"·"비의 항구"·"슬픈 밤"을 노래하였다. 1934년에는 김선초(金仙草)와 함께 취입한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작곡의 "떠도는 신세"와 이면상(李冕相) 작곡의 "봉자(峯子)의 노래"를 선보였고, 1937년 "명사십리"를 히트시켰다.

1938년 가을 태평레코드사로 이적해 1939년 1월 "북극의 오천키로"의 히트곡을 내었다. 한때 가요계에서 모습을 감춘 뒤 갑자기 일본군 장교의 모습으로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일본 귀족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친일행각에 앞장서 비행기 모금운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연예인들을 위문공연에 총동원시켰으며, 1939년 콜럼비아사에서 폴리돌사로 전속을 옮겼다. 강석연(姜石燕)·다카시나 데쓰오(高階哲夫)·고가 마사오 등과 함께 콜럼비아관현악단 반주로 취입한 "That's O.K."·"가는 청춘"·"가련한 내 오빠"·"가을"·"가을밤"을 포함한 50여 곡의 유행가·유행가요·유행곡·유행만곡(流行漫曲)·유행소곡 및 그가 가야금과 바이올린 2중주로 취입한 곡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그가 취입한 "비오는 요코하마"·"피서지의 추억"·"항구는 멋쟁이" 등의 유행가는 폴리돌음반에 전하며, 그가 취입한 "무지개 설움"·"서글픈 마음"·"울며 새우네"·"한 많은 몸"은 오케음반에 전한다. 콜럼비아음반에 유행가 43곡을, 폴리돌음반에 두 곡을, 오케음반에 두 곡을, 그리고 태평음반에 한 곡을 취입하였다.

채규엽과 관련된 여러 기사는 『東光』(1931) 22호, 『三千里』(1932) 4권 7호, 『三千里』(1933) 5권 3호, 『三千里』(1934) 6권 9호, 『三千里』(1935) 7권 1~5호·9호, 『三千里』(1935) 7권 7호, 『三千里』(1936) 8권 2호, 『四海公論』(1936) 2권 5호, 『모던朝鮮』(1936) 1호, 『三千里』(1938) 10권 11호, 『四海公論』(1938) 4권 9호, 『新世紀』(1939) 1권 3호, 『朝光』(1940) 62호 등에 소개되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869~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