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생
[ 樂生 ]
- 요약
① 일본에 건너가 활약한 삼국 음악인의 한 부류.
② 조선시대 장악원(掌樂院)의 좌방(左坊) 소속 음악인.
③ 아악대(雅樂隊)의 음악인.
① 일본에 건너가 활약한 삼국 음악인의 한 부류. 나라(奈良 710~794) 시대부터 일본에 건너가 활약한 삼국의 악생은 대보(大寶 701~703) 때 왕립음악기관인 가가쿠료(雅樂寮, Gagakuryō)에 20명, 20명, 그리고 20명 총 60명이었다. 731년(천평 3) 백제악생 26명, 신라악생 4명, 그리고 고려악생 8명으로 변동됐다가 848년(嘉祥 원년) 악제개혁(樂制改革) 이후 백제악생 7명, 고려악생 18명, 그리고 신라악생은 4명은 (百濟樂師)와 4명 및 (新羅樂師) 2명의 지도 아래 음악활동을 전개하였다.
일본에서 활동한 삼국악생의 역사적 변천 일람표
구분 | 삼국악 | ||||||
---|---|---|---|---|---|---|---|
백제악 | 고려악 | 신라악 | |||||
악생 | 악사 | 악생 | 악사 | 악생 | 악사 | ||
연대 | 702년(大寶 2) |
20명 |
4명 |
20명 |
4명 |
20명 |
4명 |
731년(天平 3) |
26명 |
[4명] |
8명 |
[4명] |
4명 |
[2명] |
|
809년(大同 4) |
[26명] |
4명 |
[8명] |
4명 |
[4명] |
2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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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년(嘉祥 원년) 이전 |
20명 |
[4명] |
20명 |
[4명] |
20명 |
[2명] |
|
848년(嘉祥 원년) 이후 |
7명 |
[4명] |
18명 |
[4명] |
4명 |
[2명] |
② 조선시대 (掌樂院)의 (左坊) 소속 음악인. 조선초기 (右坊) 소속의 (樂工)과 함께 활동한 악생은 아악 연주를 담당한 궁중음악인이었다. 이들은 양인(良人) 중에서 선발됐다.
악생취재(樂生取才) 때 시험은 아악 중 삼성(三聲)과 등가의 노래 및 (文舞)·(武舞)였다. (1469~1494) 때 장악원의 좌방에 (樂師) 2명과 악생 297명 및 보수 100명 총 399명이 있었다. 성종 때 장악원의 좌방에 소속된 악생은 아악 연주를 담당하였다.
악생은 조선 사회의 양인계층에서 선발된다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규정됐다. 성종 때 악생 399명은 1604년(선조 37) 397명으로 줄었고,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 이후에는 185명으로 감원됐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이후에는 190명이었고, 영조(1726~1776) 때에는 195명이었다.
장악원 악생의 역사적 변천
연대 | 악공 | 악생 | 합계 |
---|---|---|---|
성종(1469~1494) 때 |
572명 |
399명 |
971명 |
1604년(선조 37) |
427명 |
397명 |
924명 |
정묘호란(1627년) 이후 |
441명 |
185명 |
626명 |
인조(1623~1649) 때 |
429명 |
190명 |
619명 |
영조(1724~1776) 때 |
446명 |
195명 |
641명 |
1904년(광무 원년) |
- |
- |
772명 |
1907년(융희 원년) |
- |
- |
305명 |
1910년(융희 4년) |
- |
- |
189명 |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 많이 감원되어 영조(1724~1776) 때 195명이었다. 정조(1776~1800) 때의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의하면, 악생은 (典樂)·(典律)·전음(全音) 등의 잡직벼슬을 맡았다. 악생의 잡직은 체아직(遞兒職)으로서 장악원으로부터 1년에 네 차례 추천서로 이조(吏曹)에 보고하여 사령서(辭令書)를 받았다.
③ (雅樂隊)의 음악인. 1913년 아악대를 (李王職雅樂部)로 개칭할 때, 악공과 악생은 (雅樂手)로 개칭됐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4.1454~55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130~31, 212, 322, 551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방송, 277쪽
- 『악학궤범용어총람』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10년, 210~11쪽
참조어
고려악생(高麗樂生) , 백제악생(百濟樂生) , 신라악생(新羅樂生) , 악인(樂人), 악공(樂工) , 악사(樂師) , 복식(服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