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악

속악

[ 俗樂 ]

요약 향악의 별칭.

① 고려 때 우리 고유의 음악·악기·춤을 가리키던 말. 『』 권71(「악지」)에 나오는 속악은 당시 에서 들어온 (雅樂)이나 당악(唐樂)의 대칭어였다. 이 속악은 삼국시대부터 전승된 우리의 음악·춤·악기 및 고려 때 것에 대한 총칭이었다. 『고려사』 권71(「악지」) 소재의 속악기(俗樂器)는 ··(大笒)··(牙拍)·(無imagefont)·(舞鼓)·(奚琴)·필율(觱篥)·(中笒)·(小笒)·박(拍), 이상 12종이었다. 이 12종 중 무고·동동·무애는 악기가 아니라 춤인 향악정재였다.

또한 고려의 속악곡(俗樂曲)은 ""(西京)·""(大洞江)·""(五冠山)·""(楊州)·""(月精花)·"장단"(長湍)·""(定山)·""(伐谷鳥)·""(元興)·""(金剛城)·""(長生浦)·""(叢石亭)·""(居士戀)·"처용"(處容)·""(沙里花)·""(長巖)·""(濟危寶)·""(安東紫靑)·""(松山)·""(禮成江)·""(冬柏木)·""(寒松亭)·""(鄭瓜亭)·""(風入松)·""(夜深詞)·""(翰林別曲)·""(三藏)·""(蛇龍)·""(紫霞洞)이다.

삼국속악(三國俗樂)으로 신라의 것은 ""(東京)·"목주"(木州)·""(余那山)·""(長漢城)·""(利見臺)이고, 백제의 속곡은 ""(禪雲山)·""(無等山)·"방등산"(方等山)·""(井邑)·""(智異山)이며, 고구려의 속곡은 ""(來遠城)·""(延陽)·""(溟州)이다.

고려 때 중국의 음악을 당악이라 하여 (左坊)에 두었고, 우리 음악을 이라 하여 (右坊)에 두었다고 서긍(徐兢)의 『』(高麗圖經)에 전한다. 여기에 나오는 향악은 『고려사』 권71(「악지」) 소재의 속악이다.

②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 조선초기에 이르러서도 속악의 개념은 고려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음악과 춤 그리고 악기와 노래의 뜻으로 사용됐으나, 노래와 춤보다는 음악에 한정된 의미로 축소되면서 차츰 향악으로 바뀌었다. 즉 우리의 춤은 (鄕樂呈才)로, 그리고 우리의 악기는 (鄕部樂器) 곧 (鄕樂器)로 세분됐다. (1418~1450) 아악의 부흥으로 말미암아 아악이 (掌樂院)의 좌방에 속했고, 우방에 속한 속악은 당악과 향악이었다.

악조총의(樂調總義)에 의하면, "속악(俗樂: 향악)은 7조(調)만 쓴다"고 하였다. ··· 세종(1418~1450) 때 회례연의(會禮宴儀)에서 제5작 이상은 아악을 연주하고, 그 이하는 속악을 연주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 권3에 나오는 아속악(雅俗樂)은 아악과 속악의 약칭이고, 『』(樂學軌範 1493) 권2의 의 속악은 아악의 대칭어로 사용됐으나, 차츰 속악이라는 명칭은 향악으로 바뀌게 됐다. 20세기 초 을 뜻하는 말로 속가(俗歌)·(俗謠)·속곡(俗曲)이라는 용어가 사용됐고, 이런 용어들이 광복 후에는 민속악(民俗樂)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3.1294~96쪽
  • 『악학궤범용어총람』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10년, 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