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음악

삼한시대음악

[ 三韓時代音樂 ]

요약 삼국 이전 한반도의 삼한 및 남만주(南滿洲)의 음악문화.

예로부터 한민족(韓民族)은 중국의 동쪽 오랑캐를 뜻하는 동이족(東夷族)으로 중국문헌에 전한다. 동이족에 관한 기록 우리나라의 역사책에는 없지만 중국의 역사책에는 전하기 때문에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3세기 무렵까지 상고사회의 음악문화는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권30 「동이전」(東夷傳)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부여(夫餘)에서는 정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국중대회(國中大會)에서 며칠 동안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는데, 그런 의식을 (迎鼓)라고 한다 ··· 고구려(高句麗)의 백성들은 가무를 즐겼으므로, 나라의 고을과 마을에서 밤새 남녀가 서로 어울려 유희하였다. 10월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국중대회를 (東盟)이라고 한다. ··· 예(濊)에서는 늘 10월마다 제사를 지내고는 낮과 밤에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추었는데, 그런 의식을 (舞天)이라고 한다"라고.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 그리고 예의 무천과 같은 제천의식은 모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종교의식이었다. 국중대회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그런 종교의식은 국가적 규모의 큰 행사였다. 그런 국가적 규모의 큰 행사에서 공연된 가무는 농사나 목축 같은 그들의 생업을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비는 행위였다. 이렇듯 우리나라 상고사회의 음악활동은 원시 종교의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음악의 이런 종교적 기능은 다른 나라 상고사회의 음악문화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국중대회에서는 일반 백성과 정치적 지배세력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지만, 고대국가의 설립에 따를 왕족과 귀족층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음악수용층의 변화가 생겼다.

한편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즉 삼한의 음악문화도 진수의 『삼국지』 권30 「동이전」에 이렇게 전한다.

"한(韓)에는 늘 5월에 씨를 뿌리고 나면 신(神)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사람이 무리를 지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술을 마시면서 밤낮을 쉬지 않았다. 그 춤은 10여 명이 일제히 시작하여 서로를 따르면서 높고 낮게 땅을 밟기도 하는데, 손과 발이 서로 박자에 잘 맞아 (鐸舞)와 비슷한 데가 있다. 10월에 농사가 끝나면, 5월의 행사 때와 같이 한다"라고.

매년 5월과 10월 두 차례 한반도의 남쪽 지방에서 연주됐던 가무는 당시 북쪽 지방의 국중대회와는 연주형태 면에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회적 기능 면에서는 서로 달랐다.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 및 예의 무천은 나라 전체가 참여하는 국가적 규모의 종교의식이었지만, 삼한에서 1년에 봄·가을 두 번 거행된 의식은 농경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 단위의 풍습이기 때문에 그 행사를 국중대회라고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사가 잘 되게 신에게 기원하는 자리에서 벌어진 가무의 종교적 기능은 북쪽 지방의 제천의식과 서로 공통적이다.

삼한사회의 이런 풍습은 조선초기 충청도 웅천 지방 웅천신당(熊川神堂)의 무속행사에서 발견된다. 오늘날 마을의 안녕(安寧)과 번영(繁榮)을 비는 경기도 에서 상고사회의 그런 풍습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탁무(鐸舞)와 비슷하다는 춤은 마치 전라도 지방의 와 민속놀이와 비슷하게 보인다.

이런 가무 외 변진(弁辰)에서 연주된 고대 에 관한 기록이 『삼국지』 권30 「동이전」에 "변진의 풍속은 노래 부르기와 춤추기를 좋아하고 술 마시기를 즐겨한다. 슬(瑟)이 있는데, 그 모양은 축(筑)과 비슷하고 그 악기로 타는 악곡이 있다"라고 하였다. 축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슬이라고 진수가 기술한 현악기는 의 모체로 보이는 고대 현악기가 지금의 낙동강(洛東江) 하류 지역에서 연주됐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3.1155~57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29~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