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악정재

당악정재

[ 唐樂呈才 ]

요약 중국계 궁중무용의 총칭. 일명 당악무(唐樂舞).

『』 권71(「악지」)에는 당악정재라는 용어가 없고 그냥 당악 항목 아래 헌선도(獻仙桃)·(壽延長)·(五羊仙)·(蓮花臺)·(抛毬樂), 이상 다섯 당악정재가 기재됐다. (鄕樂呈才)에 대응하는 고려의 당악정재는 헌선도·수연장·오양선·연화대·포구락 이렇게 다섯 종목이다.

『』(樂學軌範 1493)에 처음으로 나오는 당악정재라는 명칭은 고려 때 (宋詞) 중 춤과 노래의 가무희(歌舞戲)인 대곡(大曲) 곧 의 (敎坊樂)에서 유래한다.

향악정재와 쌍벽을 이루는 당악정재의 특징은 첫째로 춤을 무대로 인도하는 (竹竿子)가 나오는 점이고, 둘째는 (呈才女伶)들이 한문으로 된 (唱詞)와 (致語)를 노래 부르는 점이며, 셋째 당악이 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는 점이다.

이러한 당악정재는 1073년(문종 27) 2월 교방여제자(敎坊女弟子) 진경(眞卿) 등이 (燃燈會) 때 공연한 (踏沙行歌舞)가 첫 번째 사례이고, 둘째는 같은 해 11월 교방여제자 초영(楚英)이 공연한 포구락과 (九張機別伎)이다. 이 세 가지는 당악정재의 효시(嚆矢)이다. 『고려사』 권71(「악지」)의 당악조(唐樂條)에 나오는 헌선도·수연장·오양선·포구락·연화대는 송사의 대곡이다. 다섯 종목은 모두 『악학궤범』에서 당악정재로 소개됐다.

조선초기 (1469~1494) 때 창제된 당악정재는 금척(金尺: 일명 )·(受寶籙)·(覲天庭)·(受明命)·하황은(賀皇恩)·(賀聖明)·(聖澤), 이상 일곱 종목이다. 조선후기 순조(1800~1834) 때에는 (長生寶宴之舞)·(演百福之舞)·(帝壽昌)·(催花舞), 이상 네 종목의 당악정재가 창제됐다.

고려 때 당악정재의 반주음악은 ""(會八仙引子)·"만"(獻天壽慢)·""(獻天壽令)·""(金盞子慢)·""(金盞子令)·""(瑞鷓鴣慢)·""(瑞鷓鴣嗺子)·""(千年萬歲), 이상 여덟 곡이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步虛子令)과 ""(鄕唐交奏)가 반주음악으로 연주됐다. 조선후기 당악정재의 특징은 첫째로 순조(1800~1834) 때 새로운 정재가 많이 창제됐고, 둘째로 당악정재와 향악정재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경향을 보였으며, 셋째로 반주음악으로 당악 대신에 을 사용한 점이다.

순조 때 창제된 당악정재는 모두 순조 때 『』(進爵儀軌 1828)와 『』(進饌儀軌 1829)에 도설되어 전한다. 새 당악정재의 반주음악으로는 "보허자령"(步虛子令)과 "향당교주"(鄕唐交奏)가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2.577~78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170, 349~51쪽

참조어

궁중무용(宮中舞踊), 궁중정재(宮中呈才), 당악무(唐樂舞), 정재(呈才) , 향악정재(鄕樂呈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