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띠꾸미개

말띠꾸미개

[ 雲珠 ]

말띠꾸미개는 운주(雲珠)라고 부르며 삼계(三繫)의 혁대가 교차되는 곳을 묶는 금구(金具)로서, 그 자체로서 말을 장식하기 때문에 마구 중에서 대표적인 장식구로 분류되기도 한다. 운주는 본래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나, 한국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특히 후걸이가 말 등의 중앙에서 교차되는 지점에 장치된 5각(脚) 이상의 것에 한정하여 이 운주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밖에 4각이나 3각을 가지면서 굴레나 후걸이의 혁대가 교차되는 곳에 사용된 금구는 ‘십금구(십金具)’라고 부르며, 또 삼계의 장식을 위하여 혁대가 교차하지 않는 곳에 박은 금구나 신라 등에서 많이 출토되는 입주부말띠꾸미개(立柱附雲珠)와 같은 것은 모두 ‘식금구(飾金具)’라고 부르고 있다.

용어가 세분되어 있기는 하나, 한국에서는 이를 엄격히 구분하여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각 금구들이 분묘에서 출토되었을 때, 그것을 용도에 따라 엄밀하게 구별하여 부르기도 쉽지 않다. 말띠꾸미개의 본래 기능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세분된 용어의 사용은 어쩌면 무용하다고도 생각된다. 그것은 일본에 5각 이상의 말띠꾸미개가 도입되는 시기와 관계하고 있다. 일본의 말띠꾸미개 도입은 한국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서, 한국에서는 그 시기에 후걸이 구조의 변화로 인해 5각 이상의 것이 서서히 정형화되어 가는 단계에 접어든 데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4각의 것도 같은 위치에서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예들이 있다. 또한 입주부말띠꾸미개와 같이 이전 시기의 복잡한 구조의 후걸이에 사용되던 것들은 그 기능이 제외되고 만다. 중국에서 말띠꾸미개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고, 십금구를 ‘절약(節約)’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한편 식금구 중에도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형토기의 가슴걸이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단순히 혁대에 박아 장식만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동시에 교차하거나 수식으로 늘어뜨려진 다른 혁대를 묶는 역할, 즉 십금구의 기능을 겸한 예들도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처럼 한정된 용도에 사용되는 용어를 빌려 사용하더라도, 그 뜻을 확대하여 사용하는 것이 국내 현실에서는 좋다고 본다. 따라서 말띠꾸미개는 단순히 삼계를 장식하는 기능도 있으나, 주된 기능은 여러 줄의 혁대를 서로 묶어 연결하는 것으로 파악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말띠꾸미개·십금구·식금구와 같은 구별은 그 다리수(脚數)나 형태의 이름을 앞에 연서하여 “X각Y형 말띠꾸미개”와 같은 식으로 구별하여 부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삼한시대에는 주로 환형이나 8자형의 청동금구가 말띠꾸미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삼국시대의 말띠꾸미개에는 크게 보아 환형(環形), 판형(板形), 반구형(半球形)의 세 종류가 있으며, 이밖에 반구형의 정부에 입주를 세워 영락을 매단 입주부말띠꾸미개와 반구형의 정부에 입주를 세우지 않고 원두정을 박은 무각소반구형(無脚小半球形)의 말띠꾸미개 등 5종이 있다. 이중 판형말띠꾸미개(板形雲珠)는 십금구로서 주로 굴레에 사용되어졌던 것으로 생각되며, 또 반구형말띠꾸미개(半球形雲珠) 중에는 중앙에 조개나 유리 등을 감입(嵌入)한 다양한 형태의 말띠꾸미개도 출토되고 있다.

삼국시대의 각 말띠꾸미개들은 기능상의 차이나 출현과 사용시기, 출토 지역 등에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 그 장식성을 통해서 기승자의 위세를 표현해 주기도 한다. 가장 오랜 기간 널리 사용된 것은 환형말띠꾸미개(環形雲珠)로서 실용적인 마장에 사용된다. 가야에서는 주로 이 실용적인 말띠꾸미개가 사용되었으며, 말띠꾸미개의 다양한 발전은 신라의 식마문화(飾馬文化)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신라의 식마에서는 5세기대는 고구려의 전통을 잇는 입주부말띠꾸미개와 무각소반구형의 말띠꾸미개가 신분위계에 각각 사용되어지다가, 6세기대가 되면 반구형의 말띠꾸미개가 만들어져 전(前) 시기의 말띠꾸미개를 대체하면서 널리 사용된다. 이것은 후걸이 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환형·판형·반구형말띠꾸미개들은 본체와 별조(別造) 혹은 공조(共造)되어진 각을 가지는데, 이 각의 수를 통하여 연결되어진 가죽끈의 수를 알 수가 있다. 이들 말띠꾸미개들을 교차하는 가죽에 직접 고정하는 방법으로는, 하나는 각에 1-5개의 못(병)을 박는 방법이 있으며, 또 하나는 각과 본체가 만나는 각기부에 ‘책금구(責金具)’라 불리는 철제, 철지은장, 철지금장, 금동제와 같은 다양한 재질의 꺾쇠를 한두 개 ‘ㅁ’자상으로 꺾어 가죽과 함께 묶는 방법이 있다. 두 가지 방법이 같이 사용되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1ㆍ2.고령 자산동 30호묘 3.경주 황남대총 남분 4ㆍ5.경주 황남대총 북분 6.안동 조탑리 3-3호묘 7ㆍ8.미추왕릉 7지구 3호묘

1ㆍ2.고령 자산동 30호묘 3.경주 황남대총 남분 4ㆍ5.경주 황남대총 북분 6.안동 조탑리 3-3호묘
7ㆍ8.미추왕릉 7지구 3호묘

참고문헌

  • 新羅와 加耶의 馬具(金斗喆, 韓國加耶史論叢 3, 韓國加耶社會硏究所編, 1992년)
  • 新羅·加耶古墳 出土 馬具에 대한 硏究(姜裕信, 嶺南大碩士學位論文, 198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