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

하윤

[ 河潤 ]

요약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1488년 붕당을 저질러 유배된 임사홍의 서용을 반대하였으며, 이듬해 예조좌랑으로 영안도에 가서 민폐를 살피고 돌아왔다. 당대의 명유로 정광필과 교유하였고 진주 정강서원에 배향되었다.
출생-사망 1452 ~ 1500
본관 진주(晋州)
수부(晬夫)
운수당(雲水堂)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자는 수부(晬夫)이고, 호는 운수당(雲水堂)이다. 현령을 지낸 하계문(河繼文)의 아들로 김지경(金之慶)에게 학문을 배웠다. 1477년(성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483년(성종 14) 식년 문과 (式年文科)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검열에 임명되어 1486년(성종 17) 집안의 노복(奴僕)을 함부로 가두는 폐단을 왕에게 보고하여 시정하게 하였다.

1488년에는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동빙고(東氷庫)의 얼음의 양을 살피고 돌아왔으며, 이어 예문관 봉교로서 붕당을 저질러 유배된 임사홍(任士洪)의 서용을 반대하였다. 이듬해 예조좌랑으로 왕명을 받고 영안도(永安道:함경남도)에 가서 민폐를 살피고 돌아왔다. 1490년 모친상을 당하여 사직하였다가 1494년(연산군 즉위년) 호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형조좌랑에 임명되었다.

1496년(연산군 2) 사헌부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연산군의 난정을 보고는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갔다. 이후 다시 관직에 등용되어 지평을 지냈는데, 1498년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廢妃尹氏)의 입묘추숭(立廟追崇)을 반대하여 순천군수로 좌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