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경

김지경

[ 金之慶 ]

요약 조선 전기의 문신. 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대에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475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수령의 탐학을 처벌하고 성책을 보수하는 등의 치적을 남겼다. 1485년에는 신병으로 사직하였으나, 성종의 배려로 한직인 호군에 제수되었다.
출생-사망 1419 ~ 1485
본관 선산
유후
시호 경질

본관 선산. 자 유후(裕後). 시호 경질(景質).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한 다음 교서관교감(校書館校勘)에 제수되었으며, 1440년 집현전정자(正字)가 되었다. 이어 저작랑(著作郞) ·예문관검열 ·봉교(奉敎)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 ·감찰 ·정언(正言) ·이조정랑 등을 거쳐 장령(掌令) ·검상(檢詳)을 지내고, 단종 때 사간원지사(司諫院知事)가 되었다.

세조 때 노부모 봉양을 구실로 외직을 요청하여 성주목사(星州牧使)로 나가고, 1465년(세조 11) 성균관대사성에 이어 대사간(大司諫)이 되어 서얼 출신 유자광(柳子光)의 병조정랑 임명을 반대하였다. 그 뒤 강원도 ·충청도의 관찰사를 역임하고, 1469년(예종 1)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예종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성종이 즉위하자 1470년 예문관제학, 1471년 대사헌(大司憲)을 지냈다.

1472년(성종 3) 전라도관찰사로 나가 약초재배관리에 힘썼고, 세곡(稅穀) 운송문제 대책도 강구하였다. 1474년 호조참판으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75년 평안도관찰사로 나가 수령의 탐학을 처벌하고 성책을 보수하는 등 3년 동안 많은 치적을 남겼다. 그 뒤 중추부동지사를 지내고, 1484년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가 되었다. 이듬해 신병으로 사직하였으나, 성종의 특별한 배려로 한직인 호군(護軍)에 제수되었다.

참조항목

성종

역참조항목

하윤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