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빈 알리

후세인 빈 알리

[ Sayyid Hussein bin Ali ]

요약 1908년부터 1917년까지 아라비아 반도 메카의 태수를 지냈다. 이후 1924년에 사우드 가문에 의해 축출당할 때까지 헤자즈 지역을 통치했으며, 스스로 모든 무슬림의 칼리프라고 선언했다.
출생-사망 1855 ~ 1931.6.4

그는 헤자즈 지역의 왕이었으며, 스스로 모든 무슬림의 칼리프임을 주장하였다. 1855년에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당시 최고의 권위와 잠재적 힘을 가진 가장 유력한 아랍 가계인 쿠라이쉬 부족 하심가(家)의 유력자이자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샤리프 후세인은 오스만 제국을 지원했으며, 독일과 손을 잡았으나,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이 그를 제거 할 계획을 세웠다는 증거물을 획득한 뒤 동맹을 깨트렸다. 후에 그는 카이로 주재 고등 판무관 맥마흔과 1914년 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왕복 10회에 걸쳐 서신을 교환했다. 이 서신들은 '후세인-맥마흔 서한(Hussein-McMahon Correspondence)'으로 불리며, 그 내용은 아랍 민족이 오스만 제국에 반대하여 연합국 측에 서서 전쟁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전후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한 아랍 국가의 독립과, 후세인 지도 하에 아랍 칼리프제 구축을 지원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후세인은 1916년 영국의 아랍 국가의 독립 보장을 믿고,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아랍봉기를 일으켰고, 이 봉기는 그의 3남 파이살 1세와 ‘아라비아 로렌스’로 알려진 카이로 주재 영국 정보장교인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Tomas Edward Lawrence)가 함께 지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은 샤리프 후세인을 '헤자즈 왕국'의 왕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영국은 약속했던 대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하는 아랍 국가의 독립과 칼리프제의 구축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샤리프 후세인은 1924년에 스스로 모든 무슬림의 칼리프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샤리프 후세인은 같은 해, 헤자즈 지역의 유력 가문이자,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인 사우드가의 수장인 이븐 사우드에 공격을 받아 메카, 메디나, 제다를 차례로 상실했다. 그 후 그는 사이프러스로 유배되었으나, 곧 차남 압둘라(Abdullah)가 통치하고 있던 트랜스요르단(Trans Jordan)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1931년에 사망했다. 헤자즈왕국의 왕위는1924년 장남 알리(Ali)에게 넘어갔으나, 사우드가의 공격을 받아 1925년까지만 지속되었다.

역참조항목

요르단, 파이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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