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대장경

초조대장경

[ 初雕大藏經 ]

요약 고려 현종 때 판각한 고려 최초의 대장경이다. 거란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만들어졌으며, 또한 목판인쇄술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초조대장경

초조대장경

거란(契丹)의 침입으로 개경(開京)이 함락 당하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고려 현종 2년(1011년) 발원하여 선종 4년(1087)에 걸쳐 완성된 고려 최초의 대장경이다. 불력에 의한 국가 수호를 도모하는 것이 제작의 직접적 동기이지만 고려의 불교적 역량이 반영된 국가적 사업이었다. 성종대에 전래한 송의 개보판(開寶版) 대장경과 국내에서 전래되어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처음 작업이 이루어졌고 문종년간에는 새로 전래한 거란의 대장경까지 제작에 참고하였다. 그 규모는 대략 6천 권 정도의 분량으로서 당시의 한역(漢譯) 대장경으로서는 동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이었다. 여기에는 정교하게 새겨진 판화가 풍부해 미술사적 가치도 적지 않다.

대장경의 조판 작업은  흥국사, 귀법사 등 여러 사원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경판은 흥왕사 대장전(大藏殿)에 한동안 보관되었다가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符仁寺)로 옮겨졌다. 고종 19년(1232) 몽고군의 침입으로 부인사에 있던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자 몽고와의 항전이라는 호국의 의지를 담아 대규모 작업을 다시 시도한 것이 해인사대장경판(팔만대장경)의 각판이다.

한때 초조대장경의 조판 동기는, 현종이 돌아가신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송 개보판 대장경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초조대장경의 판목은 없어졌으나 그 인쇄본이 국내의 여러 박물관과 일본 쿄토, 쓰시마 등지에 상당량 잔존되어 있으며 그 수량은 도합 2천 여 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조대장경은 고려의 불교적 역량과 목판 인쇄술의 발전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귀중한 민족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