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원터마을

김천 원터마을

[ 金泉─ ]

요약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龜城面) 상원리(上院里)에 있는 전통마을.
김천 방초정

김천 방초정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면서도 조선시대 경북 지역 사대부가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마을 이름인 원터는 조선시대 이 곳에 있던 관영(官營) 숙소인 상좌원(上佐院)에서 유래하였다. '원기(院基)'로도 부른다.

원터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인 1510년(중종 5)쯤으로 추정된다. 연안이씨(延安李氏) 부사공파(副使公派) 일가가 처음으로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룬 이래, 오늘날까지 연안이씨 세거지(世居地)로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마을은 풍수지리학상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으로, 낮은 산이 마을 3면을 포근히 감싸고, 앞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규모는 60호가 채 못되지만, 아직까지도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유서 깊은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다.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였으나 6·25전쟁 때 아흔아홉 칸 종가가 불타 없어지고, 1990년대에는 작은 종가의 사랑채마저 불타 없어지는 재해를 겪었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마을 어귀에 있는 방초정(芳草亭:보물 제2047호)이다. 유학자 이정복(李廷馥)이 1625년(인조 3)에 지은 정자로, 마을의 중심시설이다. 1689년(숙종 15) 중건된 뒤, 1727년(영조 3) 보수를 거쳐, 1736년 홍수로 유실된 것을《가례증해(家禮增解)》를 저술한 이의조(李宜朝)가 1788년(정조 12)에 다시 지어 지금에 이른다.

정자 뜰 앞의 연못 가운데에는 두 개의 섬(석가산)을 배치해 독특한 정원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조선시대 정원 조경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방초정 외에 작은 종가의 안채와 종가 사당, 재실, 열녀비각 등의 건축물도 각기 독특한 조경과 어우러져 보는 맛을 더한다.

참조항목

가례증해, 방초정

역참조항목

구성면,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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