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척화비

청주 척화비

[ 淸州 斥和碑 ]

요약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조선시대 석비. 1978년 10월 27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청주 척화비

청주 척화비

지정종목 충청북도 기념물
지정일 1978년 10월 27일
관리단체 청주시
소재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사로 117 (남문로2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1978년 10월 27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청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크기는 높이 108㎝, 나비 47㎝이다.

척화비는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신미양요를 치른 후 백성들에게 서양에 대한 항전의식을 심어주기 위하여 서울 및 전국의 요충지에 세웠던 비이다.

척화비의 내용은 "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이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의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는 말이다. 비석 표면에 "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이란 말을 큰 글씨로 적고, 다른 내용은 측면에 작은 글씨로 적었다.

이 척화비는 윗부분이 깨어져 洋자와 則자가 없어졌다. 1976년 2월 29일 석교동(石橋洞) 노상 하수구 뚜껑으로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역참조항목

남문로2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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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동영상

청주 척화비 흥선대원군이 세운 비석 충청북도 기념물 제23호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이 외세의 침입을 막기위해 전국의 주요 요충지에 세운 비석이며 이를 척화비라고 부른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 서양의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그것은 화친하는 것이며, 화친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95㎝, 폭 46㎝, 두께 19㎝이며 다소 거친 화강암으로 제작했으며 2단의 대석을 쌓고 그 위에 비신을 세웠는데, 비신은 윗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