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남산성

충주 남산성

[ 忠州 南山城 ]

요약 충청북도 충주시 금봉산(남산)에 있는 삼국시대 퇴뫼식 산성.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충주 남산성

충주 남산성

지정종목 충청북도 기념물
지정일 1980년 1월 9일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산24-1번지
시대 삼국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크기 면적 1,165㎡

충주시 동남쪽에 위치한 해발 636m의 금봉산(錦鳳山) 정상에 위치하여 충주산성(忠州山城)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麻姑仙女)가 7일 만에 축성하였다고 전해져 마고성(麻姑城)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약사(朝鮮略史)》에는 백제 구이신왕 시대에 쌓은 것으로 개로왕 21년(475)에 보수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개로왕이 바로 이 성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다는 설과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된다. 고려시대에는 스스로 왕을 칭하던 자가 점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고려 말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져 물리친 곳이다. 고려 고종 40년(1253) 9월 몽골이 침입하여 충주성을 공격하자 충주창정 최수가 금당협에 매복하여 몽골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포위당한지 70여일에 군량이 다하고 사기가 저하되자 방호별감(防護別監) 승장 김윤후(金允侯)가 전군과 관노까지를 격려하여 사력을 다해 싸워 몽골군을 격퇴하였다. 1254년 9월에는 차라대(車羅大)가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갑자기 비가 오고 바람이 불뿐 아니라 성안의 고려인이 열심히 싸우자 물러갔다.

이 성은 충주 동쪽의 계명산 영맥과 서쪽의 대림산성, 북쪽의 탄금대 토성지와 함께 충주를 사방에서 방어하기 위하여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구조는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은 퇴뫼식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축성 재료는 석재를 고루 쌓아올린 전형적인 축성형식을 보인다.

1983년 충주시 조사에 의하면 성 둘레는 1,145m이지만, 중간에 무너진 곳이 있고 5개소에 걸쳐 775m의 성곽이 남아 있다. 성안의 넓이는 46,524㎡이고, 성벽의 높이는 7~8m에 이르고 있다. 성안에는 우물자리가 2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으며 동서의 산능선상에 문지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성안에서 신라, 백제의 유물로 보이는 토기 조각 및 기와쪽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977년에 무너진 곳의 일부를 보수하였고 1986년에는 시의 지원으로 충주공업전문대학 박물관팀이 발굴 조사를 하였다.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충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조항목

충주시

역참조항목

충주성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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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동영상

충주 남산성 삼국시대 축성된 테뫼식 산성 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 삼국시대 축성된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해발 636m의 금봉산(錦鳳山) 정상부에 있다. 충주 금봉산은 남산이라고도 부르며, 산성은 둘레 1,120m, 성벽 높이 6.5m, 너비 5∼6.5m의 규모이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麻姑仙女)가 7일 만에 축성했다고 하여 마고산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