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섭의 묘

홍일섭의 묘

[ 洪一燮의 墓 ]

요약 3·1운동을 주도한 홍일섭의 묘.
홍일섭의 묘

홍일섭의 묘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46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되면서 지정해제되었다. 1919년 당시 연기지방의 3·1운동을 주도한 홍일섭(洪日燮:1878 ∼1935)의 묘이다. 그의 애국정신을 선양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1978년 2월 26일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어 주민들의 성금과 도지사와 군수의 지원, 관비 등을 모아 묘역과 유적을 정화하고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홍일섭은 연서면 출신으로 1906년 시종원(侍從院) 주사직에 합격하였으나 국운이 날로 쇠퇴함을 개탄하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던 중 3·1운동을 맞았다. 3월 30일 조치원 시장의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를 벌일 것을 계획하고 당시 연기군 청년회원들을 곳곳에 배치한 후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었다. 함께 체포된 수십 명의 인사들은 다시는 만세를 부르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풀려났으나 홍일섭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거부하여 공주형무소에서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수감생활중에 얻은 고질병으로 고생하다가 1935년 6월 14일 58세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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