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명 선생 비

고경명 선생 비

[ 高敬命 先生 碑 ]

요약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고경명선생비

고경명선생비

지정종목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4년 5월 17일
관리단체 금산군
소재지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 522-15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문인출신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금산(錦山)에 침입한 왜군을 맞아 싸우다 순절한 고경명의 충혼을 기리는 비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비각 안 좌대 위에 세워진 순절비에는 ‘제봉고선생순절지기(霽峰高先生殉節地記)’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제봉’은 고경명의 호이다.

고경명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전라좌도 의병대장으로서 두 아들 종후(從厚)·인후(仁厚)와 함께 각처에서 도망쳐나온 관군 6,000여 명을 이끌고 왜군과 맹렬하게 싸우다가 인후·유팽로(柳彭老)·안영(安瑛)과 더불어 전사하였다. 뒷날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고, 광주의 포충사(褒忠寺), 금산 성곡서원(星谷書院)·종용사(從容祠), 순창 화산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다.

고경명의 묘·신도비(神道碑)와 사당(祠堂)은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長城邑) 영천리(永川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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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선생비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의 비석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호 조선 중기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산에서 의병을 이끌고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고경명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는 비석이다. 그의 고향은 전남 장흥인데 고향에서 은거하다 선조가 의주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 6천 명을 이끌고 충남 금산에서 싸우다 아들과 함께 순절하였다. 1656년 효종은 고경명이 순절한 자리에 비석을 세웠는데 1940년 일본순사가 비석을 파괴하였다. 이후 비석 파편을 수습하여 보관하였다가 1964년 비각을 건립하고 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