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사 소장 익재 영정

가산사 소장 익재 영정

[ 佳山寺 所藏 益齋 影幀 ]

요약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홍정리 가산사에 소장된 고려시대의 학자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초상화. 1988년 3월 16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지정종목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8년 3월 16일
관리단체 경주이씨종중
소재지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홍정리 488-2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1988년 3월 16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경주이씨 종중에서 관리한다. 가산사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사당의 정면에 있는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가산서원(佳山書院)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여기에 있는 이제현의 초상화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원화의 모습과 유사하게 옮겨 그린 이모본이다.

이제현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역옹·실재,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301년(충렬왕 27) 성균시에 장원하고 이어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다가 1314년 원나라에 가서 조맹부 등과 고전을 연구하였다. 다시 돌아와 관직에 올라 공민왕 때에는 문하시중을 지냈다. 당대의 명문장가로 정주학(程朱學)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조맹부의 서체를 도입하여 유행시켰다. 저서에 《익재집》 《역옹패설》 《익재난고》 등이 있다.

가산사에 소장된 익재영정의 화면 윗부분에는 초상화에 대한 글이 적혀 있어 그 내력을 알 수 있다. 원화는 1319년(충숙왕 6) 이제현이 선왕인 충선왕을 따라 중국에 갔을 때 그린 것이다. 충선왕이 진감여(陣鑑如)를 불러 이제현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고, 초상화에는 당대의 석학 북촌 탕병룡(湯炳龍)이 글을 써 넣었다. 그러나, 당시 이제현은 귀국하면서 이 그림을 가져오지 못하였다가 31년 뒤에 우연히 이 영정을 다시 보게 되어 감회의 글을 써 넣은 것이다.

가산사의 영정은 손을 맞잡고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의자 뒤로 서책과 가야금, 향로가 놓여진 탁자가 있다. 옮겨 그린 것이지만 얼굴 처리나 옷주름 표현, 의자나 기물 등의 묘사가 뛰어나 원본에 가깝다. 그러나 눈동자나 수염, 입술 등은 더 후대에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다시 옮겨 그린 연대는 18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제현의 영정은 국립중앙박물관에 1본, 전라남도 강진군의 귀곡사에 1본, 충청북도 청원군의 수락영당에 1본 등 총 4본이 전해진다.

역참조항목

가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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