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화당(178-1)

체화당(178-1)

[ 棣華堂(178-1) ]

요약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채화당

채화당

지정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6년 12월 11일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가천2길 52 (청리면, 체화당(경상북도문화유산자료제78호))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당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체화란 형제의 우애를 뜻하는 말로 이전(李imagefont:1558∼1648)과 이준(李埈:1560∼1635)의 우애를 상징하는 말이다. 체화당은 이전의 셋째 아들 신규(身圭)가 1632년(인조 10)에 지었으며 이전이 살던 집이다.

이전은 자(字)는 숙재(叔載)이고 호(號)는 목재(睦齋)이다. 나중에 호를 월간(月澗)으로 고쳤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으며 평안도 찰방(察訪)과 현감을 지냈다. 이준은 자는 숙평(叔平)이고 호는 창석(蒼石)이며 이전의 아우이다.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가 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경세(鄭經世)와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안령 전투와 고모담(姑母潭)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준이 백화산(白華山)에서 왜군과 싸우다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형 이전이 죽음을 무릅쓰고 동생 이준을 업고 전장을 빠져나와 생명을 건지게 했다는 내용이 《형제급난도(兄弟急難圖)》에 적혀 있다.

건물로는 체화당과 이전을 모시는 월간사당(月澗祠堂)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 600m 떨어진 곳에 이준을 모시는 창석사당(蒼石祠堂)이 있다. 체화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반의 팔작집이며, 창석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창석사당(178-2)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참조항목

청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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