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효자 정려비
[ 朴矩孝子 旌閭碑 ]
- 요약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석. 1999년 3월 11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박구효자 정려비](https://dbscthumb-phinf.pstatic.net/2765_000_45/20181009205905770_X1CC0JR9I.jpg/94786.jpg?type=m250&wm=N)
박구효자 정려비
지정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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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99년 3월 11일 |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산83번지 |
시대 | 조선시대 |
종류/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크기 | 높이 110cm, 너비 43cm, 두께 16cm |
1999년 3월 11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때 예조판서(禮曺判書)로 증직된 박구(朴矩:?∼142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535년(중종 30) 나라에서 내린 정려비로,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박구는 태종 때 의주목사, 의주병마사, 예조참의, 강원도병마도절제사(江原道兵馬都節制使)를 거쳐 세종 때 경상도수군도안무처치사(慶尙道水軍都安撫處置使)와 좌군총제(左軍總制)를 지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박구는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고 한다.
정려비는 높이 110㎝, 너비 43㎝, 두께 16㎝로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앞면에 "효자가정총제박구지려(孝子嘉靖總制朴矩之閭)"라는 비문이 새겨 있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이익공 맞배지붕이며, 앞면 윗부분에 "가정대부예조참의(嘉靖大夫禮曺參議) 좌군도총제(左軍都總制) 증예조판서(贈禮曹判書) 박구지려(朴矩之閭)"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그 밑으로는 비의 내력을 적은 상량문(上樑文)이 걸려 있다. 왼쪽 윗부분에는 명종이 하사한 치제문(致祭文)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원래는 어머니의 묘소 근처에 있었으나, 홍수 때 광령산(廣寧山) 기슭으로 옮겼다가 1818년(순조 18)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