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효자 정려비

박구효자 정려비

[ 朴矩孝子 旌閭碑 ]

요약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석. 1999년 3월 11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박구효자 정려비

박구효자 정려비

지정종목 시도민속문화유산
지정일 1999년 3월 11일
소재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산83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크기 높이 110cm, 너비 43cm, 두께 16cm

1999년 3월 11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때 예조판서(禮曺判書)로 증직된 박구(朴矩:?∼142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535년(중종 30) 나라에서 내린 정려비로,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박구는 태종 때 의주목사, 의주병마사, 예조참의, 강원도병마도절제사(江原道兵馬都節制使)를 거쳐 세종 때 경상도수군도안무처치사(慶尙道水軍都安撫處置使)와 좌군총제(左軍總制)를 지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박구는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고 한다.

정려비는 높이 110㎝, 너비 43㎝, 두께 16㎝로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앞면에 "효자가정총제박구지려(孝子嘉靖總制朴矩之閭)"라는 비문이 새겨 있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이익공 맞배지붕이며, 앞면 윗부분에 "가정대부예조참의(嘉靖大夫禮曺參議) 좌군도총제(左軍都總制) 증예조판서(贈禮曹判書) 박구지려(朴矩之閭)"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그 밑으로는 비의 내력을 적은 상량문(上樑文)이 걸려 있다. 왼쪽 윗부분에는 명종이 하사한 치제문(致祭文)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원래는 어머니의 묘소 근처에 있었으나, 홍수 때 광령산(廣寧山) 기슭으로 옮겼다가 1818년(순조 18)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참조항목

비석, 선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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