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원융국사비

부석사 원융국사비

[ 浮石寺 圓融國師碑 ]

요약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비.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부석사 원융국사비

부석사 원융국사비

지정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지정일 1979년 1월 25일
소장 부석사
소재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부석사경내 (북지리)
시대 고려시대
종류/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크기 높이 186cm, 폭 96cm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054년(고려 문종 8)에 세운 원융국사(圓融國師)의 비이다. 비문은 예부시랑 고총이 찬하고, 유림랑 임호가 전과 서를 하였다.

이수와 귀부(龜跌)를 갖추었지만 파손이 심한 편이다. 이수는 좌우가 긴 팔작지붕형이며, 처마 끝선으로는 전각이 있고, 용마루까지 표현되어 있다. 귀부는 뒷면은 조각이 남았으나 앞쪽은 파손이 심한 편이다. 6각형의 귀갑문(龜甲文)은 안에 음각으로 〈왕(王)〉자를 넣어 정교한 표면처리를 하였다.

귀부는 비신(碑身)과 맞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각법(刻法)이 훌륭하다. 귀부 지대석은 전후면에 각 3구, 측면에 각 4구씩의 안상(眼象)을 장식하였는데, 꽃무늬를 새겨넣었다. 머리는 용두화(龍頭化) 하였으나 마치 석사자(石獅子)처럼 보인다.

비신(碑身)의 크기는 높이 186cm, 폭 96cm이며, 재료는 수성암 질청석(質靑石)로 되어 있다. 양변과 중앙부에 균열과 마멸이 심하다. 이 때문에 구양순체의 해서로 된 비문의 첫머리와 끝부분이 분명치 않고, 판독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비문의 내용은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해동금석원》 등의 문헌에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석비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으로 문종 때에 세운 원비(原碑)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원륭국사(964∼1053)는 고려초의 명승으로 속성은 김씨, 휘(諱)는 결응(決凝), 자는 혜일(慧日)이다. 12세에 용흥사(龍興寺)에서 승려가 되어 복흥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991년(고려 성종 10)에 승과(僧科)에 급제하여 대덕(大德)이 되었다. 현종 초에 승통(僧統)에 오르고, 1041년(정종 7)에 왕사(王師), 문종 때 국사(國師)가 되었다. 묘지사의 주지를 지내고 부석사(浮石寺)에서 법사가 되었다. 1053년(문종 7)에 부석사에서 입적하자 왕이 시호를 원륭(圓融)이라 하고, 절 동쪽 언덕에 장사지냈다.

비가 있는 원륭국사비각에는 해동화엄종조의상국사비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이 비의 비신은 새로 조성한 것이지만, 비갓과 비좌는 원륭국사비가 발견된 곳에 함께 있었다고 한다. 비갓은 우진각형으로 정상 중앙에 연화문을 돌린 보주가 있고 처마 끝에는 귀꽃장식이 잘 남았다. 비좌는 둥근 중판연화문대를 돌린 원형좌로 연화문은 반원이 연속된 간단한 형식이다.

참조항목

부석면, 부석사,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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