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모리재

거창 모리재

[ 居昌 某里齋 ]

요약 정온(鄭蘊)이 낙향한 후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곳을 기리기 위해 유림들이 건립한 재사(齋舍). 1995년 5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거창 모리재

거창 모리재

지정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지정일 1995년 5월 2일
소재지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73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다음해인 1637년 1월 인조가 중국 청 태종 앞에 나가 항복하는 치욕적인 화의가 성립되자 청나라와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했던 정온(鄭蘊)은 남한산성에서 칼로 배를 찔러 자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전의(典醫)와 광주목사의 손에 구명된 후 낙향하여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은거했다.

재사는 사당·모리재·서무·화엽루(花葉樓)·내삼문·협문 등과 유허비(遺墟碑) 1기로 이루어져 있다. 본당인 모리재는 자연석 초석 위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一자 구조의 팔작지붕이며 좌측과 뒤쪽에 툇마루가 있다. 대문채인 화엽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서 자연석을 원형으로 다듬은 초석 위에 원주를 사용하였다.

전면 좌측의 받침기둥 2주는 후대에 대리석을 팔각으로 다듬어 세웠으며, 팔각 활주가 네 모퉁이에 설치되었으나 현재 2개는 없어졌으며 문루 앞에 세워졌던 홍살문 역시 없어지고 원형의 초석만 남아 있다. 관리사인 서무는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 구조의 맞배지붕 민도리집 형식이며, 사당은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 구조의 맞배지붕 초익공집이다. 사당문 및 협문은 맞배형 일주문 형식이다.

모리재는 재실의 규모로서는 매우 클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남부형 민가의 형식을 띤 조선시대 건축물이며,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대대적으로 중수한 것이다. 1995년 5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