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각산봉수대

사천 각산봉수대

[ 泗川 角山熢燧臺 ]

요약 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봉수대.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사천 각산봉수대

사천 각산봉수대

지정종목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3년 8월 6일
관리단체 사천시
소재지 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 산2번지
시대 고려시대~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통신 / 봉수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고려 원종 때 설치되었으며, 사천시 대방동 각산(角山:408m) 정상에 있는 간봉(間烽)으로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 봉수망의 직결점은 서울 남산에 있었으며 간선(幹線)을 직봉(直烽)이라 하고 보조선을 간봉이라 했다.

봉화는 고대의 통신방법으로, 봉수(烽燧)라고도 한다. 주로 군사적인 목적에서 연락할 일이 있을 때 높은 산 위에 일정한 장소를 정하여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불을 피워 신호를 주고받았다. 한국에서는 1149년(의종 3)부터 법으로 정하여 실시했다.

남해의 금산에 있는 구정봉(九井峰)의 신호를 창선면 대방산을 거쳐서 받고, 용현면의 침지봉수(針枝烽燧:용현면 신복리와 석계리를 잇는 동쪽 뒷산에 위치)와 곤양면의 우산봉수(牛山烽燧:곤양면 남문외리와 서포면 외구리의 경계를 이룬 남산에 위치)로 보냈다. 우산봉수는 다시 진주 망진산봉수로 신호를 보냈다.

조선 세종 때 정식으로 봉수망이 정비되자 침지봉수와 서낭당봉수(정동면 예수리 서낭산성에 위치)를 폐지하고 다시 용현면의 안점봉수(鞍岾烽燧:사남면 화전리와 용현면 신복리의 경계인 지금의 봉대산에 위치)를 설치했다.

연락방법은 평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국경을 넘어오면 4개, 접전을 하면 5개를 올렸다. 만약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불어서 연락이 안 될 때에는 봉졸(烽卒)이 차례로 달려서 보고했다. 봉수대에 배치되는 봉군(烽軍)은 다른 군역에는 종사할 수 없고 오직 망 보는 일에만 종사했다.

참조항목

사천시,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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