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수농악

욱수농악

[ 旭水農樂 ]

요약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서 자생하여 전승되는 농악. 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정종목 시도무형유산
지정일 1988년 5월 30일
소재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기예능보유자 김호성
종류/분류 무형유산

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욱수동은 1981년 7월 경산군 고산면 욱수동에서 대구시로 편입되었으며 130여 호의 주민이 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는 자연촌락이다. 원래 욱수농악은 동제(당굿) 때 동제당에서 신내림을 축원하는 천왕받이굿과 이 내림굿에 뒤따르는 판굿과 보름달의 구걸(지신풀이), 그리고 달불놀이 때의 마당놀이가 하나의 틀이 되어 전승되어 왔다. 동제는 1970년대 도시화 과정에서 중단되었고, 달불놀이는 입산금지 이후 사라졌으나 농악과 지신풀이는 1963년부터 친목계를 조직하여 전승하고 있다. 특히 1987년 제2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여한 것을 계기로 욱수농악대를 더욱 조직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욱수농악은 동제와 연관된 축원농악과 판굿, 즉 연희농악이 복합된 농악이며, 경상도 내륙의 농악에는 농사굿이 많은 데 비하여 전체의 구성은 진굿에 가까운 농악이다. 욱수농악의 편성은 다음과 같다.

상쇠 1명은 병치를 쓰고 흰옷을 입고 적, 황, 녹색의 띠를 양어깨와 허리에 두른다. 종쇠 1명은 흰옷에 적, 황, 녹색의 띠를 양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병치를 쓴다. (6명)은 흰옷에 적, 황, 녹색 삼색띠를 양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흰색 고깔을 쓴다. 북(8명)과 장구(8명)는 징과 같은 복장을 한다. 법고(12명)는 흰옷에 적, 황, 녹색의 띠를 양어깨와 허리에 두른다. 목나팔(1명)은 징과 같은 복장을 하고 오동나무로 만든 목나팔을 분다. 양반(1명)은 두루마기를 입고 종이로 만든 정자관을 쓴다. 포수(1명)는 검은 옷을 입고 털모자를 쓰며 등에 망태, 꿩털, 토끼털을 매고 목청을 든다. 색시(1명)는 노랑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는다. 농기수(1명)와 기수(2명)는 징과 같은 복장을 한다.

욱수농악의 기본적인 연행 구성은 질굿, 천왕받이굿, 둥글데미, 마당놀이, 외따먹기, 덧배기, 오방진, 덕석말이로 짜여 있다. 연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질굿은 쇠는 2/4박자로 치며 3가지 리듬으로 변주하는 이 마을의 독특한 가락이다. 천왕받이굿은 동제당 앞에서 신내림을 받는 굿이다. 주민들은 이때 쇠가락이 ‘천왕님 천왕님 처렁처렁 내리소’ 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한다. 둥글데미는 대원들이 원형을 지어 상쇠가 무정지겡이, 허허깍깍, 잦은모리의 3가지 가락으로 변주하면 대원들은 악기장단에 맞추어 원무를 춘다. 마당놀이는 ‘ㄷ’자형의 대형에서 징, 북, 장고, 법고잡이들이 각각 조별로 묘기를 보인다. 외따기는 2열 종대의 대형에서 마주보고 앉아 있는 대원들을 상쇠가 빠른 가락으로 Z자형으로 돌면서 징, 북, 장고, 법고 열로 끊어 일으켜 풀어나간다. 외따기는 경상도 남부지방에서는 드문 전형을 가진 놀이이다. 쇠가락은 빠른 가락이 많고 잔가락이 적은 영남농악의 특징을 지니며, 특히 길굿의 가락이 독특하다. 덧배기는 상쇠가 춤매구가락에 맞춰 흥겨운 장단으로 어깨춤을 춘다. 오방진은 상쇠, 종쇠, 잡색이가 중앙에 원형을 만들고 징, 북, 장고, 법고가 각각 네 군데 원형을 그리면서 오방진을 만들어 논다. 덕석말이는 똘똘말이라고도 한다. 농기를 가운데 세우고 전원이 질주하면서 자진가락에 맞추어 원진을 치고 또 풀면서 태극형을 그리면서 두 군데에서 밀집적 원을 그린다.

예능보유자 김호성(金浩星)은 20세 때인 1948년경부터 경상북도 경산군 압량면에 거주하던 김차동(金次東)에게 쇠가락을 배웠다. 그후 김차동이 죽을 때까지 20여 년간 마을의 구걸패 등에서 종쇠로 활동하다가 고산농악대에 종쇠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85년에는 새로 창단된 현대중공업 농악팀의 지도를 맡기도 하였으며, 1989년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외의 예능보유자로는 박원호(朴元鎬), 이만방(李萬邦) 등이 있다. 박원호는 이 마을에서 출생하여 이옥관(사망), 서병극(사망)으로 이어지는 전승자로서 욱수마을의 토박이다. 설상모 이만방은 13세 때부터 이 마을의 상쇠였던 서병극을 따라다니며 끌법구를 치고 상모를 돌렸다.

역참조항목

욱수동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