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선화동

은행선화동

[ Eunhaengseonhwa-dong , 銀杏宣化洞 ]

요약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동.
선화동

선화동

위치 대전광역시 중구
면적(㎢) 1.50㎢
인구(명) 1만 5521명(2008)

면적 1.50㎢, 인구 1만 5521명(2008)이다. 북쪽으로 중촌동, 대전천 건너 동구의 중동·삼성동과 접경을 이루고, 동쪽으로 대전천을 경계로 동구의 원동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 대흥동, 서쪽으로 목동·용두동과 접경을 이룬다. 중구의 북동부에 직교형의 가로망을 가진 도심지이다.

공주군 산내면의 으능정이(은행정)·바리바우(발암리) 지역인데, 1895년(고종 32) 회덕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전군 대전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에 춘일정2정목(春日町二丁目)·춘일정3정목(春日町三丁目)이라고 하다가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고칠 때 옛 이름 은행정의 이름을 따서 은행동, 충청남도 도청이 있으므로 각 도의 관찰사가 사무를 보던 곳의 이름인 선화당(宣化堂)의 이름을 따서 선화동이라고 하였다. 1970년에 선화동은 선화1동·선화2동으로, 그 뒤 다시 선화2동이 갈라져 선화2동·선화3동으로 분동되고, 1971년에 중부출장소의 관할 구역이 되었다가 1977년 구제 실시로 중구에 편입되었으며, 1998년에 은행동과 선화동을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은행선화동은 법정동인 은행동·선화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은행동은 정자나무인 은행나무가 있었으므로 으능정이·으능젱이(지금의 은행동 55∼65번지 일대)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전 회덕군 산내면의 목척리(木尺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대전군 대전면에 편입되어 춘일정2정목(春日町二丁目)이라고 하다가 1917년에 대전면에 편입되었고,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고칠 때 옛 이름을 따서 은행동이라고 하였다.

선화동은 지금의 선화3동의 지방법원 동쪽, 어린이 놀이터에 있던 바리때 모양의 바위인 '바리바우'가 있으므로 바리바우, 변하여 바라바우·바라바위·발암(鉢岩)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목척리(木尺里)·중촌리(中村里)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발암리(鉢岩里)라고 해서 대전군 외남면에 편입되었다. 1917년에 대전면에 편입되고 춘일정3정목(春日町三丁目)이라고 하다가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고칠 때 선화동이라고 개칭하였다.

목척리(木尺里)는 목척다리(목척교·대전교) 서쪽에 있는 마을이고, 바리바우(바라바우·발암)는 선화2·3동 동쪽에 있던 마을이다. 바리바우는 연못 안에 있던 바위인데, 8·15 광복 후 한국은행 지점장의 사택을 짓기 위하여 연못을 메움으로서 없어졌다. 선화1동, 지금의 충남도청 부근은 장자가 살았다고 하여 '장자벌'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1932년에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뒤 크게 발전되었다.

선화동은 갱잇들(가양평·별수전:지금의 충남도청·선화초등학교·동양백화점 자리에 있던 들)을 비롯하여 분톳골(충남도청 뒤)·밧가래(선화3동에 있던 들)·뒷들(선화3동, 밧가래 남쪽에 있던 들) 등 넓은 들이 있던 곳인데, 1932년에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선화동으로 옮겨 온 뒤, 그동안 동구의 대전역 부근에만 발달된 시가지가 충남도청을 축으로 하여 직교형 가로망을 갖춘 도심지로 크게 성장하고 상업·경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20%가 되며, 번화가는 동부를 가로지르는 중앙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충남도청·충남도의회·대전고등법원·대전지방법원·대전고등검찰청· 대전지방검찰청·충남지방경찰청·선화파출소·은행파출소·대전국세청· 충남농민교육원·국립농산물검사소 충청지사·선화동우체국·대전법원우체국· 충남도청우체국·대전광역시 동부교육청 등 공공기관이 있으며, 동양백화점·우리백화점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는 동부를 가로지르는 중앙로와 남북으로 관통하는 대종로와 도청 뒷길이 있다. 선화1동 서남쪽 용두산 기슭에 영렬탑이 있는데, 6·25 전쟁 때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공산군과 싸우다 전사한 육군 준장 이상근 장군을 비롯하여 전몰 군경의 영령 1,603위를 모신 탑이다.

은행동 동쪽 대전천변에 목척교 유래비가 있는데, 대전천을 건너다니던 다리로 복개공사를 하여 다리는 없어지고 그 자리 위에 중앙데파트·홍명상사 건물이 들어섰다. 전에는 돌로 놓은 징검다리였는데, 새우젓 장수가 아침 저녁으로 이 다리를 건너다니다가 으레 다릿돌에 지게를 받쳐 놓고 쉬었는데, 그 모양이 목척(나무자) 같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