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곡동

형곡동

[ Hyeonggok-dong , 荊谷洞 ]

요약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동.
형곡동

형곡동

위치 경북 구미시
면적(㎢) 4.80㎢
인구(명) 31,832명(2020)

면적 4.80㎢이다. 동쪽은 송정동·광평동·사곡동, 서쪽은 원남동, 남쪽은 칠곡군, 북쪽은 원평동과 접해 있다. 법정동인 형곡동은 행정동인 형곡1·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명의 유래는 아카시아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시무실이라고 하다가 지명이 한자화되면서 형곡(荊谷)으로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선산군 하고면(下古面)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형동(上荊洞)·하형동(下荊洞)·하신동(下新洞)·동림동(東林洞)· 부산동(釜山洞) 각 일부를 통합하여 형곡동으로 하면서 구미면(龜尾面)에 편입하였다.

형곡동은 생육신(生六臣) 이맹전(李孟專)이 태어난 곳이며, 사창(司倉) 또는 하형(下荊)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임진왜란금오산성에 군영을 설치하고 이곳에 군량미를 일시 보관한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못안마을은 시무실웃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시무실못 위쪽에 있던 마을이다. 지금은 못은 매몰되어 없어졌다. 마을 북쪽에 있는 팔미바우는 옛날 어느 장사가 금오산에서 돌팔매로 던진 것이라고 한다.

향란열녀비(香蘭烈女碑)는 불당골에 있는 향란의 열녀비이다. 조선시대에 박향란(朴香蘭)이란 처녀가 17살에 임칠봉(林七奉)이라는 사람에게 시집갔는데, 남편이 포악하여 견디지 못하고 친정에 갔으나 모진 계모가 또한 못살게 굴어 도무지 살 길이 없자, 지주연(砥柱淵)에 이르러 한 여자에게 산유화 한 곡조를 가르쳐 주고, 비녀, 옥신을 벗어주며 우리 부모에게 갖다 드리라고 한 다음 물에 빠져 죽었는데, 1703년(숙종 29)에 부사(府使) 조구상(趙龜祥)이 나라에 그녀의 효심을 알려 정려(旌閭)를 내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