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가야

후기 가야

전기가야연맹의 해체 후 가야세력은 연맹체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로 존속하다가 5세기 후반 고령지역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다시 결집하였다. 고령지역은 경상도 내륙지방이었기 때문에 고구려군 침입 때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고령 지산동의 거대한 고분들은 바로 대가야 세력의 성장을 알려주는 고고학적인 증거이다. 대가야는 점차 경남 해안지방과 내륙지방의 가야국가들을 포괄하면서 5세기 후반에 이르러 새로운 가야연맹을 결성하였는데, 이것을 금관가야가 주도한 가야연맹과 구분하여 후기가야연맹이라고 부른다.

《동국여지승람》 <고령현조>에 인용된 최치원의 <석리정전(釋利貞傳)>에 대가야 시조설화가 전하는데, 이것은 고령지역의 대가야가 가야연맹의 맹주였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설화에 따르면 가야산신(伽倻山神)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天神) 이비가지(夷毗訶之)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왕(大伽倻王)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왕 뇌질청예(惱窒靑裔) 두 사람을 낳았는데,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수로왕의 별칭이라고 한다. 이 설화에서 고령 대가야왕의 조상인 이진아시의 ‘아시’는 알지(閼智) ·하지(荷知)와 같이 대수장(大首長)이란 뜻이다.

또한 대가야국 시조를 수로왕과 형제 사이로 묘사한 것은 가야연맹을 주도한 대가야가 전기가야연맹을 계승하였다는 사실을 표방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이는 대가야가 그 밖의 가야국가들을 가야연맹에 끌어들이려는 필요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대가야가 부상할 즈음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나제동맹을 결성하였는데, 이때 두 나라는 고구려에 대한 전략상 가야의 협조를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국제관계 속에서 대가야는 국제무대에 다시 등장하였다.

《남제서》 <동이전 가라국조>에, 479년 가라국왕(可羅國王) 하지(荷知)가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보국장군본국왕(輔國將軍本國王)’이란 작호(爵號)를 받았다는 자료가 전한다. 하지는 중국기록에 보이는 유일한 가야인으로서 이 무렵에 대가야가 중국과 교류할 만큼 세력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481년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신라 북쪽 변경지역에 침입하여 호명(狐鳴) 등 7성을 취하고 미질부(彌秩夫:현 포항시 흥해읍)로 진격할 때, 가야군은 백제군과 더불어 신라군을 도와 고구려군을 격파한 적도 있었다. 이 무렵 대가야는 소백산맥을 넘어 전북 임실 ·남원을 일시 점령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6세기 초반 백제와 신라의 압박이 강화되면서 대가야의 성장은 방해를 받게 된다. 510년 백제는 대가야에 대한 반격을 개시하여 경남 하동 ·거창 등을 위협하였다.

대가야는 522년 신라에 결혼동맹을 요청하였으며, 신라의 법흥왕은 대가야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찬 비조부(比助夫)의 딸을 가야왕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는 한편으로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내부체제를 굳건하게 정비한 다음, 서쪽 가야지역으로 무력진출을 적극 꾀하고 있었으며, 결혼동맹을 받아들인 것도 그러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미 신라는 지증왕대에 가야지역을 침략하여 김해지역 등을 한차례 점령한 적이 있었고, 524년에는 법흥왕이 직접 남쪽 변방지역을 순행하고 영토를 개척하였다. 532년 지속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한 금관가야는 신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신라의 금관가야 병합은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가야연맹을 위협하였다.

대가야는 신라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다시 백제 ·와 연합을 추진하였다. 《일본서기》에는 이들 세력들이 541년과 544년 두 차례에 걸쳐 백제 성왕이 주재한 대책회의에 참석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대가야의 이러한 외교정책도 554년 백제 성왕이 이끄는 백제 ·가야 ·왜 연합군이 관산성(管山城:옥천)에서 신라군에 대패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진흥왕은 555년 창녕지역에 비사벌정(比斯伐停)을 설치하여 중앙군단을 주둔시키고 가야정벌을 본격화하였다. 가야세력은 관산성싸움의 패배로 무기력해진데다가 일부는 신라에 항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백제의 원조가 끊기고 일부 세력마저 가야연맹에서 이탈하자, 대가야의 위세는 크게 위축되었다. 그리하여 562년 이사부(異斯夫)가 신라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대가야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항복하였다. 이때 나머지 가야국가들도 차례로 신라에 병합되면서 가야제국은 소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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