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사탑과 불상

신라의 사탑과 불상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불교의 융성에 따라 사탑 ·불상 등을 통하여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 예술의 특징은 초기는 부족국가의 전통을 엿볼 수 있는 토우(土偶) ·기마인물(騎馬人物) 모양의 토기 등 소박성을 반영했으나 차차 고구려 ·백제 ·당의 영향을 받으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귀족사회의 예술이 등장하여 말기에는 엄격하고도 조화미가 넘치는 신라 고유의 특징이 나타났다.

통일 전의 조각물로는 선덕여왕 때에 완성한 호국사찰인 황룡사와 백제인 아비지(阿非知)가 건축한 황룡사 목조 9층탑과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인 장륙존상이 있었으나 몽고의 병란으로 소실되고 말았다. 황룡사지 발굴 결과 사원의 가람(伽藍) 배치는 백제 ·고구려의 형식이 혼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분황사의 모전석탑(模塼石塔)과 패기에 넘치는 인왕상(仁王像) ·사자상(獅子像)의 조각과 원통형(圓筒形)으로 27단이나 석재로 쌓아올려 만든 첨성대와 석빙고(石氷庫) 등이 남아 있다.

불상은 미륵반가상(彌勒半跏像)이 많이 만들어진 것이 특색인데 마애불(磨崖佛)로는 경주 삼화령의 미륵삼존불, 월성군 단석산 신선사(神仙寺) 석굴의 마애상, 경주 인왕동의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경주 선도산(仙桃山)의 마애삼존불, 군위 석굴의 삼존불상, 영주 가흥리의 마애삼존불상, 특히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의 반가사유상은 동양 최대의 반가상으로 장중한 위엄을 강조하려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은 삼국시대의 최대 걸작이나 출토지가 분명치 않아 국적이 불분명하다. 이 때의 조각가 양지(良志)는 영묘사(靈廟寺)의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과 천왕상, 법림사(法林寺)의 삼존불상을 만들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고 현존하는 것은 석조물(石造物)뿐인데 자하문에 이르는 청운교 ·백운교와 석가탑 ·다보탑은 균형과 조화미를 이룬 걸작으로 구례화엄사 사자탑과 함께 신라 석탑의 일품이다. 이 밖에 감은사지 3층석탑, 나원리 5층석탑, 창녕 술정리 3층석탑 등은 일반적인 석탑으로 꼽힌다. 석굴암 석굴은 인조(人造) 화강암 석굴로서 구조는 전실과 후실로 되어 있는데, 전실 벽에는 팔부신상(八部神像) ·금강 역사상 ·사천왕상을 배치하고 후실 중앙의 대좌(臺座) 위에 본존불상(本尊佛像)이 있다.

그리고 본존불상이 있는 벽에는 천부상(天部像) ·11면관음보살 ·유마거사 등이 본존불상을 옹위하고 있다. 이 석굴암의 불상은 신라미술의 극치를 이루는 작품이다. 불교는 통일 후 산간불교(山間佛敎)로 발전하는 경향이 나타나 부석사, 지리산의 화엄사, 팔공산의 미리사, 계룡산의 갑사 등 오악(五岳) 중심으로 발전한 화엄종(華嚴宗)의 사찰이 유명하고 이 밖에 해인사 ·범어사 ·금산사(金山寺:母岳山) ·법주사 등 법상종(法相宗) 계통의 대 ·소 사찰이 전국 각지에 건립되어 불교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8세기를 맞이하면서 특히 이와 같은 석탑과 장중한 불상을 제작한 것은 국가안태를 기원하는 호국적 성격도 있으나 전제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국왕의 위엄을 종교적인 세계에서 나타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