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지방제도

신라의 지방제도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였다. 말단행정 단위인 촌(村)의 장은 그 지역의 세력가를 촌주(村主)로 임명, 그 지방 행정기관의 통제를 받도록 하였다. 한편 각주에는 군단(軍團)인 신라는 전국을 5주(州:軍主)로 나누고 주 밑에는 군(郡:太守) ·현(縣:縣令)을 두어 정(停)을 두어 국방을 담당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지방행정 조직은 군사조직이기도 하여 지방관이 군사 지휘권을 겸하였다. 또한, 수도 행정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동원경(東原京:강릉, 639), 중원경(中原京:충주, 557) 등 2소경을 두고 사신(仕臣:왕족)을 파견하여 중앙집권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통일 후에는 확대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하여 677년(문무왕 17)경부터 685년(신문왕 5) 사이에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재편성하였다. 통일 후 지방제도는 점차 행정적인 성격으로 변모했으나 그 기구는 통일 전과 동일하게 주·군·현·촌과 향(鄕)·부곡(部曲)으로 구성되었다. 촌은 몇 개의 자연촌으로 구성되어 양인들이 거주했고, 향·부곡은 피정복민이나 반역민을 집단적으로 사민(徒民)시켜 천민화한 집단지역으로 여겨진다.

신라의 지방제도 본문 이미지 1
북원경(원주)남원경(남원)금관경(김해)중원경(충주)서원경(청주)신라발해

특히 지방 향리(鄕吏)들의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하여 상수리제도를 실시하였다. 이 제도는 각 주의 향리 1명씩을 인질로 중앙에 머무르게 하여 시위(侍衛) ·사역(使役) 또는 궁중용 화목(火木)을 공급하게 하였다. 5소경 제도는 수도인 경주가 동쪽에 치우쳐 있는 불편을 보충하려는 의도와 지방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5소경의 위치는 원래의 신라영토 밖인 소백산맥 외각지대로서 신라가 정복한 피정목민들을 강제로 사민시켜 중앙에서 파견한 왕경인(王京人)의 지배를 받도록 하였다.

그리고 피정복 가야 ·백제 ·고구려인에 대하여는 그들의 신분과 관직에 따라 신라 17관등의 신분체제에 편성시켰다. 그러나 백제인은 10관등급(大奈麻), 고구려인은 7관등급(一吉飡) 이하의 신분에 편입되었다. 그러므로 출세의 제약을 받은 피정복민들은 그들의 진로와 출세를 문화면에서 발휘하였다. 그 결과 5소경은 지방문화 발달의 산실로서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다. 대가야계(大伽倻系)의 강수·우륵·김생은 중원경에서, 고구려계의 법경(法鏡)은 남원경에서 각각 출세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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