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건축

백제의 건축

공주 공산성 연지

공주 공산성 연지

백제의 건축은 절터 ·탑 ·고분(古墳)에서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절터로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金馬面) 소재의 백제 최대의 미륵사지(彌勒寺址)가 있고 이 곳에 남아 있는 미륵사지 석탑은 동양 최대의 것으로 목조탑(木造塔)의 형식을 모방한 석탑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정림사지 5층석탑(定林寺址五層石塔)은 우아하고 세련되어 안정감을 주며 삼국시대 석탑 중 가장 우수하다.


백제의 건축 본문 이미지 1 
                    [사진] 미륵사지 석탑
 

백제의 분묘는 복장(複葬)이 가능한 석실묘의 전통과 현실(玄室) 벽화의 내용면에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으며, 동시에 중국 남조의 전실(塼室) 고분의 형태까지 받아들인 것으로, 당시 대륙과 활발한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백제 한성시대의 고분은 서울 송파구 석촌동(石村洞)의 것이 대표적인데, 이는 졸본(卒本) 지방의 고구려 초기 고분과 유사한 적석총(積石塚)이며, 웅진(熊津)시대의 공주 송산리(宋山里) 고분은 굴식[橫穴式] 돌방[石室] 고분이다.

또한 무령왕릉과 같은 전분(塼墳)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특히 무령왕릉은 연화문(蓮花文)의 벽돌로 된 아치형의 전축분(塼築墳)으로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금관·석수(石獸)·동자상(童子像)·청동경·자기·지석(誌石)·금은 장신구 등이 있는데, 이 고분을 통해서 백제의 국가상, 사회생활, 양(梁)나라와의 문화교류, 장법(葬法)은 물론이고, 특히 삼국간의 문화교류, 문화의 특수성과 공통성을 확인할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고분이다.

또 사비시대의 부여 능산리(陵山里) 고분은 횡혈식 석실고분으로 송산리 고분보다 규모는 작으나 건축기술과 연화문 ·운문(雲文), 사신도(四神圖)의 벽화가 세련되었다. 그리고 충남 서산에 있는 마애삼존불상(磨崖三尊佛像)은 백제 말기에 화강암벽에 새긴 마애석불인데, 소박한 옷차림, 엷은 미소를 띤 온화한 아름다움은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금동관세음보살상(金銅觀世音菩薩像:충남 부여군 출토), 금동미륵보살반가상(金銅彌勒菩薩半跏像), 무령왕릉의 출토품인 금제 관식(金製冠飾) ·석수 ·동자상, 금은 장식품인 목걸이·팔찌·귀걸이 등이 유명하며 산수귀문전(山水鬼文塼)·연화문전(蓮花文塼) 등과 기와 등에도 백제미술의 우수성이 나타나 있는데, 고구려의 와당(瓦當)은 힘과 정열(와당의 귀신상)을 표현한데 비하여 백제의 것은 온화한 아름다움이 그 특색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 조각가로서는 신라의 황룡사(皇龍寺) 9층탑을 건축한 아비지(阿非知)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