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갑주

서양의 갑주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서양에서는 갑주가 발달하였으며,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하였다. 편의상 고대 ·중세 ·근세 이후로 나누어서 각시대의 전형적인 갑주에 대하여 알아본다.

⑴ 고대:고대의 갑주는 그리스에서나 로마에서나 다같이, 도보전(徒步戰)에 알맞도록 경쾌하게 만들어졌으며, 손발은 노출된 채 원형 ·사각형의 방패로 방호하였다. 로리카(lorica)라고 하는 로마시대의 갑주가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흉갑(胸甲)과 배갑(背甲)을 주체로 한 것으로, 가슴부분의 겉면에 부조(浮彫)를 새기고, 어깨와 허리에는 가죽 또는 금속의 짧은 조각들을 이어서 만든 어깨받이와 허리받이를 붙였다. 갑옷 위에는 파르다맨탐 또는 사굼이라는 화려한 망토를 둘러입었다. 투구는 반원구형의 주발 모양인데, 차양이 달려 있고, 정수리에는 초승달 모양 또는 부채 모양의 크레스트(crest)가 붙어 있는 외에 새의 깃털 등의 장식도 달았다. 신은 가죽으로 만든 반장화 또는 샌들을 신었다

⑵ 중세:갑주는 신체의 완전 방호를 위하여 중장(重裝)으로 변하였다. 전성기에는 전신을 강철판으로 둘러싸듯 한 것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갑주로서는 메일(mail:쇠사슬을 엮어 만든 갑옷)과 플레이트아머(plate armour:강철만을 잇대어 만든 갑옷)를 들 수 있다. 메일은 10세기 이후부터 성행하였는데, 한 벌에 몇만 개의 쇠고리를 이어 엮어서 만들었으며,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를 완전히 둘러싸게 되어 있었다. 갑옷 위에는 서코트라고 이르는 겉옷을 둘러입고, 가슴부분에 문장 등을 표시하였다. 투구는 원추형이나 만두 모양의 것으로 얼굴 전체를 완전히 둘러쌀 수 있도록 되었으며, 눈과 코 부분에만 조그만 구멍을 뚫어 놓은 절구형 투구도 있었다. 플레이트 아머는 앞서 말한 메일의 주요 부분이 점차 강철판으로 바뀌어서 15세기경에 완성된 갑주이다. 흉갑(胸甲) ·배갑(背甲) ·견갑(肩甲) ·완갑(腕甲) ·각갑(脚甲) 등의 각부의 강철판을 서로 경첩 ·돌쩌귀 등으로 이어 맞추어서 몸 전체를 완전히 둘러쌀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형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세부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몸의 윤곽에 맞추어서 만들었으며 어깨 부분은 둥글게 부풀어오른 반면 허리 부분은 잘록하게 되고, 가슴 부분은 불룩하게 된 것이 있는가 하면 중심선이 능선으로 된 것도 있었다. 장갑, 즉 곤틀릿(gauntlet)은 손가락 없는 벙어리형과 손가락이 있는 형이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대개 나팔 모양의 커프스(cuffs:소맷부리)가 달려 있었고, 손가락 부분에는 많은 금속편을 연결하였거나 또는 가죽장갑에 덧붙여 만들었다.

즉 살러렛(solleret)은 조붓하고 얇은 강철판을 리벳으로 연결하여 구부러지게 하여서 각갑(脚甲)의 끝에 이어 맞추게 된 것이 보통이었다. 투구는 여러 가지 종류 ·형태 ·명칭의 것이 있었으나, 속이 깊은 냄비나 깊은 주발을 거꾸로 한 모양의 샐릿(sallet)과, 정상부가 둥글고 코끝이 돌출한 아밋(armet)이 잘 알려져 있다. 아밋은 서양 투구의 대표라고 할 만큼 널리 이용되었던 것으로, 안면부분에는 밖을 볼 수 있게 터놓은 좁은 틈과, 호흡용의 작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바이저(visor)라는 마스크형의 덮개가 있는데, 필요없을 때는 위로 젖혀 올렸다.

⑶ 근세 이후:총포 화약과 집단전술의 발달은 갑주의 형태를 크게 변화시켰다. 한편으로 총탄의 위력에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두껍고 견고한 흉갑(胸甲)이 요구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장(重裝)의 갑주는 실용적 가치가 적다는 것이 판명되어 경장화(輕裝化)하게 되었다. 또한, 주로 의식용의 장식적인 갑주가 왕후(王侯) ·무장(武將)의 예장(禮裝)으로 이용되었다.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에 걸친 흉갑기병(胸甲騎兵)이나 용기병(龍騎兵)의 갑주나, 오늘날 유럽 각국의 친위대 ·의장대의 예장용 갑주는 허리까지의 짧은 흉갑과 배갑으로 되어 있고, 고대 로마시대의 것과 비슷한 투구를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참조항목

장갑

카테고리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