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사회

우크라이나의 사회

체르노빌 폐허

체르노빌 폐허

1990년대에 들어 우크라이나는 다른 구소련 공화국과 같은 다민족간의 폭력사태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민족으로 구성된 우크라이나에서도 민족문제는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크림반도에 타타르인들이 살고 있었고, 이들은 크림반도에서 하나의 소비에트 자치공화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크림반도에 살고 있던 타타르인들은 전쟁 동안 독일군에 협력하였다는 이유로 크림반도로부터 추방당했다. 그후 많은 러시아인들이 크림반도에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1954년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영역에 편입되었다. 오늘날 크림반도에는 주로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다.

최근에 크림반도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은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아직도 러시아연방과 우크라이나 사이의 크림반도를 둘러싼 갈등의 소지는 남아 있다. 또한 크림반도에서 추방당한 타타르인들이 그들의 고향인 크림반도로 다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다. 한편 동부 돈바스 지역의 주민도 대다수가 러시아인들인데, 이들은 분리 독립을 강력히 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북부의 체르노빌에서는 1986년 4월 26일 구소련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방사능에 노출되어 희생된 사람들이 수천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13만 5000명의 주민이 오염지대에서 소개(疏開)되었지만, 주위의 더 넓은 지역에 있는 토양·식물·동물 등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벨라루스폴란드뿐만 아니라 심지어 노르웨이 등까지도 피해를 입었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 북부의 순록이 방사능에 노출됨으로써 순록을 먹는 인간도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경제가 악화됨에 따라, 서부지역과 동부지역 사이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동부 지역에서는 구소련 시절 가동되던 공장의 과반수가 문을 닫게 됨에 따라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구소련연방국가와 좀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서부지역에서는 민족주의가 팽배하고 있으며 또한 모스크바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하여 러시아와의 경제적 밀착 관계를 반대한다. 

교육은 7∼15세 동안 의무교육이 실시되며, 우크라이나어를 통해 고등교육이 실시된다. 1990년 이후 사립대학과 종교대학이 생겨났고 1991년에 사회복지제도가 재조직화되고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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