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역사

크로아티아의 역사

로마시대 유적

로마시대 유적

크로아티아의 선주민은 일루리아족으로 기원전 3세기에 해안지방에서는 로마와 접촉을 가졌고 내륙지방에서는 켈트족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 초에 고트족, 5세기 전반에 훈족의 침입을 받았다는 사실 이외에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 6세기에는 북쪽에서 슬라브인과 아바르인이 들어왔고, 7세기에는 슬라브인이 대거 이주하여 왔으나 당시 이들에 의한 사회적· 정치적 통일은 실현되지 않았다.

9세기에 들어와 슬라브라는 이름과 함께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7~9세기에 북부는 프랑크왕국, 동부는 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925년 크로아티아의 트미슬라브공(公)이 왕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크로아티아 왕국의 통일이 이루어졌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1102년 헝가리왕을 통치자로 하는 헝가리-크로아티아 국가가 성립되었으며, 1202년에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크로아티아의 해안산지인 달마티아의 일부를 차지하였다. 더욱이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투르크의 공격이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남(南)헝가리의 모하치전투에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연합군이 투르크군에게 패하였다. 러시아-투르크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자 합스부르크가(家)의 페르디난도 1세가 크로아티아의 왕위를 차지하였다. 19세기 전반에 이르러 헝가리의 통치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186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결과 오스트리아가 패배하자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에서 벗어나 1918년 이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왕국(일명 베오그라드 왕국, 1929년 이후는 유고슬라비아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1980년 티토가 사망한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경제가 침체기에 빠져들고 연방 내 공화국들 간에 분열이 일어나면서 사회적 위기가 찾아왔다. 이에 더해 1980년대 말부터 동유럽의 자유화 물결이 크로아티아에도 도달하였다.

1990년 4월 크로아티아 공화국 최초의 자유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이 선거에서 투즈만이 이끄는 크로아티아민주연합(HDZ)이 승리함에 따라 비공산 민족주의 정권이 탄생하였다. 곧이어 5월에 투즈만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12월 새 헌법이 채택되었다. 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으로부터 이탈하려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연방 내 최대 공화국인 세르비아와 민족적으로 강하게 대립하였고, 특히 경제적으로 농업 중심의 남부 각 공화국에 비해 경제적 부담을 상대적으로 크게 져야 하는 데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1991년 5월 주민투표에서 ‘주권국가에 의한 국가연합’에 대한 찬성이 94%에 달해 1991년 6월 독립선언을 하였다. 결국 크로아티아는 연방 유지를 지향하는 세르비아 공화국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세르비아와의 전쟁이 발발하자 국내의 세르비아인들은 따로 ‘크라이너’라는 공화국을 수립하여 크로아티아 측과 맞섰다.

같은 해 6월에는 연방군대가 크로아티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여 내전에 돌입하였고 9월에는 연방군이 크로아티아에 대공세를 가하였다. 12월에 세르비아인의 크라이너 자치구가 크로아티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고 역시 12월에 독일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승인한 것을 시작으로 1992년 1월 EU도 이들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UN은 3월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인 지구인 동·서슬라보니아와 크라이너 세 지구에 30개국 1만 4000명의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정전 감시활동을 전개하였다. 크로아티아는 5월에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함께 UN에 가입하였다. 1993년 1월에는 크로아티아군이 정전을 파기하고 크라이너를 침공하여 발발한 내전으로 1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1994년 1월 신유고 연방 측과 관계정상화 협정에 조인하고, 같은 해 3월 크라이너 지역 세르비아계와 휴전 협정에 서명하였다.

1995년 5월 크로아티아 군대는 서슬라보니아를 점령하였으며, 같은 해 8월 크라이너 지역이 크로아티아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동슬라보니아는 UN의 통제 아래에 있다가 1995년 데이턴에서 체결된 평화협정에 따라 과도 행정부(UNTAES, UN Transitional Administration for Eastern Slavonia)를 설치하였다. 1998년 1월 동슬라보니아에 거주하는 모든 세르비아인은 크로아티아 시민이 되었다.

전쟁 이후 크로아티아는 전쟁에 의한 피해 복구, 경제 회복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민족적, 국가적 이슈가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언론, 경찰, 사법체계를 장악하고 통제하던 투즈만 대통령이 1999년 12월에 사망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개혁이 가속화되었다. 헌법 개혁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의원내각제로 전환하였으며, 2001년에는 상원을 폐지하고 단원제로 전환하였다. 부패와 행정적 비효율성, 실업 등의 사회 문제 개선을 위한 개혁들도 추진해 왔다.

크로아티아는 1992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하고 2000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원국이 되었으며, 2009년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였다. 2000년 평화를 위한 동반자협정(Partnership for Peace)을 체결한 이후 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협상을 지속적으로 진행한 결과, 2013년 7월에 유럽연합으로부터 2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을 승인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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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즈딘성

바라즈딘성 크로아티아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수도인 자그레브에서 80km정도 떨어져 있는 옛 바로크건축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도시이다. 출처: cor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