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홀바인

한스 홀바인

요약 16세기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영국 헨리 8세의 궁정화가이기도 했으며, 인물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과 정확한 사실주의적 묘사에 힘입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헨리 8세의 초상

헨리 8세의 초상

원어명 Hans Holbein der Jüngere
출생-사망 1497 ~ 1543
국적 독일
활동분야 회화
출생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주요작품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초상 Portrait of Erasmus of Rotterdam》(1523), 《대사들 The Ambassadors》(1533), 《헨리 8세의 초상 Portrait of Henry VIII》(c. 1536)

1497년경 르네상스 미술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인 독일 남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대(大) 한스 홀바인의 아들이자 제자로 아버지의 회화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미술가 집안이었던 홀바인가(家)는 네덜란드 미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탈리아의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소(小) 한스 홀바인 역시 일찍이 북유럽의 정확한 사실주의와 이탈리아의 균형 잡힌 구성, 명암 대조법, 조각적인 형태, 원근법 등을 익혔다.

한스 홀바인은 1515년경 스위스의 바젤에서 화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바젤은 인문주의 사상이 널리 퍼져 있어 홀바인은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특히 당시 그곳에서 활동하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지원이 컸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인해 교회의 장식이 금지되면서 화가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리자 홀바인은 1526년 영국으로 향했다. 이 때 에라스무스는 그를 영국의 토머스 모어 경에게 추천해 주었으며, 홀바인은 영국에 머무는 1528년까지 토머스 모어 경의 후원을 받았다.

이후 홀바인은 바젤에 잠시 머물다 종교개혁 운동이 확산되면서 독일어권 국가들의 종교미술 주문이 급격하게 감소하자 1532년 다시 런던으로 이주했다. 1535년 홀바인은 헨리 8세의 궁정 화가가 되어 영국 왕족과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의 초상화는 외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인공들의 지위를 정확히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입체감에 대한 자각과 인물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 정확한 사실주의적 묘사에 힘입어 홀바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543년 런던에서 사망했다.

주요 작품에는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초상 Portrait of Erasmus of Rotterdam》(1523), 《예술가의 가족 The Artist's Family》(c. 1528), 《대사들 The Ambassadors》(1533), 《헨리 8세의 초상 Portrait of Henry VIII》(c. 153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