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미사일위기

쿠바미사일위기

[ Cuban missile crisis ]

요약 1962년 10월 22일∼11월 2일의 11일간 소련의 핵탄도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시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여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던 국제적 위기.

1959년 수립된 쿠바의 혁명정부에 대하여 미국은 1961년 4월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에 의한 쿠바 반(反)혁명군의 침공작전을 시작하고, 미주기구(OAS)로부터의 쿠바 축출, 미국 해·공군의 영해·영공 침범 등 군사·외교압력을 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쿠바는 1962년 9월 ‘소련-쿠바무기원조협정’을 체결하여 소련의 미사일을 도입하였다. 미국은 그 해 10월 14일 중거리탄도미사일의 발사대가 쿠바에 건설 중임을 공중촬영으로 확인하였다. 22일 미국 대통령 J.F.케네디는 텔레비전 전국방영을 통하여 처음으로 “소련은 서반구에 대하여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라고 공포하고, 쿠바에 대하여 해상봉쇄조치를 취하였다. 케네디는 소련의 N.S.흐루쇼프 서기장에 국제연합의 감시하에 공격용 무기를 철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전세계의 긴박감 속에서 소련은 26일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거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하고, 27일 쿠바의 소련 미사일기지와 튀르키예의 미국 미사일기지의 상호철수를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27일의 제안을 무시하고, 26일의 제안을 수락할 것을 결정하였다. 28일 흐루쇼프는 미사일의 철거를 명령하고 쿠바로 향하던 16척의 소련선단(船團)의 방향을 소련으로 돌림으로써 11월 2일 위기는 사라졌다. 소련이 쿠바로부터의 폭격기 철거에 동의한 20일 미국은 해상봉쇄를 풀었으며, 12월 7일 소련은 공격용 무기를 쿠바로부터 철거하였음을 미국에 통고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63년 미 ·소 간에 핫라인(hot line:긴급통신연락선)이 개설되었고, 핵전쟁 회피라는 공통의 과제하에서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모스크바조약)’이 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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