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차키스

카잔차키스

요약 그리스의 시인·소설가·극작가.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역사상 위인을 주제로 한 비극을 많이 썼다. 그리스 난민의 고통을 묘사한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대표작으로 《그리스인 조르바》, 《오디세이아》등이 있다.
카잔차키스 묘

카잔차키스 묘

원어명 Níkos Kazantzakís
출생-사망 1883.2.18 ~ 1957.10.26
국적 그리스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그리스 크레타섬 이라클리온
주요저서 《그리스인 조르바》(1947)

1883년 출생이며 그리스 크레타(Creta)섬의 수도인 메갈로카스트로(현 이라클리온) 출신이다.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당사 크레타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그의 조부와 부친은 튀르키예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사춘기 때부터 이런 집안의 영향으로 전투에 참가하였고 튀르키예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1889년 크레타에서 튀르키예인 관리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 튀르키예인들에 의해 기독교인 학살이 시작되자 그의 가족은 키클라데스 제도 낙소스(Náxos) 섬으로 피신하였다.

낙소스 섬에서 프랑스 가톨릭 수도회가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며 프랑스어를 배웠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그리스정교를 믿었기 때문에 프랑스 가톨릭의 영향을 반대하며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고교시절에는 물리학 수업을 듣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과, 인간이 신의 축복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1902년 아테네로 건너가 아테네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졸업하자 그리스 섬 곳곳을 여행하였다. 1907년에는《동이 트면》이라는 희곡을 발표하여 작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해 신문사 편집부에서 일을 하다 10월에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앙리 베르그송과 니체의 철학을 공부하였는데 카잔차키스에게 큰 사상적 변화를 가져오는 시기였다. 특히 니체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는데 자신의 젊은 시절에 가장 중대하고 정신적으로 가장 굶주린 시기에 니체는 자신에게 자양분을 준 인물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니체의 표현대로 이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힘과 정신으로 질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불교에 심취하여 부처를 통해서도 자신의 구원을 얻기위해 노력했다.

1911년에는 고향 크레타 돌아왔으며 첫번째 부인인 갈라테아(Galatea Alexiou)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성격차 때문에 1925년에 이혼하였고 1945년에 엘레니(Eleni Samiou)와 재혼하였다. 1912년 발칸전쟁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육군에 입대하였으며 전쟁의 승리로 크레타는 독립을 쟁취하여 그리스로 편입되었다.

1914년 이후 카잔차키스는 한곳에 머물지않고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을 다니며 여행을 하게되는데 여행은 그의 인생에서 방황이자 구원을 위한 목적이었다. 그리스 정교의 성지인 아토스 산의 수도원을 순례하였고, 이스라엘, 시나이반도,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을 여행했다. 1917년에는 친구 알렉시스 조르바와 갈탄 광산을 찾기위해 크레타 해안에서 머물렀다. 그들의 광산사업은 망하고 말았지만 조르바와 추억을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로 집필하였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유쾌함과 순수함을 존경했고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한다.

1919년에는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등 코카서스 지역을 여행했으며 이지역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 난민들을 다시 본국으로 정착시키는 일을 맡았다. 1923년 베를리에서 《신의 구원자들》을 집필하였고 1924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머물렀다. 1928년에는 북유럽에서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여 블라디보스톡까지 여행했다. 루마니아 시인 파나이트 이스트라티(Panaït Istrati)와 동행했으며 막심 고리키(Maksim Gor'kii)를 만나기도 하였다. 1925년 카잔차키스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데 스스로 해방을 선언하며 예술에 심취하여 문학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1928년에는 크레타 에기나(Aegina) 섬에 칩거하며 《오디세이아 Odíssa》집필에 몰두했다.

카잔차키스는 유럽의 철학·문예·사회사조 등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도 자연인의 본원적(本源的)인 생명력을 잃지 않았으며, 그의 이러한 신념은 고향을 무대로 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Víos kai politía tou Aléxi Zormpá》(1947)에 잘 반영되었다. 그밖에 그리스 난민의 고통을 묘사한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 O Khristós Xanastavrónetai》(1955) 등 만년의 소설에 의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본령은 시작(詩作)으로 호메로스에서 취재하여 근대인의 고뇌를 그린 장편 철학시 《오디세이아 Odíssa》(1938)가 그의 대표작이다.

참조항목

그리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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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 묘

카잔차키스 묘 에게해 크레타섬. '희랍인 조르바'를 지은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이다.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