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신
[ 鄭可臣 ]
- 요약
고려 문신. 정당문학으로 사유가 되어 왕세자를 따라 원나라에 다녀오고 이듬해 성절사로서 또 원나라에 다녀와서 첨의찬성사 · 세자이사가 되었다. 문장에 능하여《천추금경록》을 저술한 외에 많은 사명을 지었다.
설재서원
출생-사망 | 1224 ~ 1298 |
---|---|
본관 | 나주 |
자 | 헌지(獻之) |
시호 | 문정(文靖) |
별칭 | 초명 흥(興) |
활동분야 | 정치 |
주요저서 | 《천추금경록(千秋金鏡錄)》 |
본관 나주. 자 헌지(獻之). 시호 문정(文靖). 초명 흥(興). 어려서 승려 천기(天琪)를 따라 상경한 뒤 고종 때 문과에 급제, 여러 요직을 거쳐 1280년(충렬왕 6) 승지(承旨), 1284년 밀직학사(密直學士), 1287년 감찰대부(監察大夫)·삼사판사(三司判事) 이듬해 밀직사판사를 역임, 1290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사유(師儒)가 되어 왕세자(王世子:忠宣王)를 따라 원(元)나라에 다녀오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서 또 원나라에 다녀와서 첨의찬성사(僉議賛成事)·세자이사(世子貳師)가 되었다.
그 후 1298년 사공(司公)·우복야(右僕射)·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 ·감수국사(監修國史)·참지광정(參知光政)·원사(院事)가 되었으며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수사도(守司徒)가 더해졌으나 갑자기 죽었다. 문장에 능하여 《천추금경록(千秋金鏡錄)》을 저술한 외에 많은 사명(辭命)을 지었다. 충선왕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