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 Gilt-bronze Seated Bhaisajyaguru Buddha of Janggoksa Temple, Cheongyang ,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

요약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장곡사 하대웅전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과 복장유물. 2022년 6월 23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장곡사 금동약사불여래좌상

장곡사 금동약사불여래좌상

지정종목 국보
지정일 2022년 6월 23일
소재지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241, 장곡사 (장곡리)
시대 고려시대
종류/분류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불상
크기 높이 91.0cm, 너비 61.4cm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장곡사 하대웅전에 있는 금동약사여래좌상 1점과 복장유물 13건 18점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이후 발원문을 포함한 복장유물 등이 추가로 연구되면서 제작시기와 발원자, 당대 시대상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2022년 6월 23일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불상의 발원문에 따르면 1346년(고려 충목왕 2)에 불상이 제작되었으며, 약 1,116명에 달하는 사람이 불상을 발원하였다고 전한다.

금동약사여래좌상

높이 91.0cm, 너비 61.4cm 크기의 고려시대 불상이다.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로 결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반쯤 감겨진 눈, 이마와 이어진 높은 코, 굳게 맞물린 입술, 촘촘한 나발(螺髮) 등을 통해 근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불상의 정수리에는 원형의 중앙 계주(中央髻珠)가 표현되어 있고, 미간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박혀있다. 불상의 옷차림은 드러낸 가슴 아래로 승기지(僧祇支)를 고정하였으며, 어깨 위로 걸친 대의(大衣)가 불상의 양 무릎과 발목을 감싸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說法印)의 수인(手印)으로 가슴 높이로 들었으며, 왼손에는 약함을 가슴 아래의 높이로 들고 있다.

복장유물

불상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은 성불원문(成佛願文) 1점, 근봉지(謹封紙) 1점, 은합 포장 직물 6점, 비단 발원문 조각 8점, 향낭 1점, 노리개 1점 등이 있다. 이 중 성불원문은 10m에 이르는 붉은 비단 위에 쓰여진 발원문인데,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불상 발원문 중 최대 규모이다. 성불원문에 쓰여진 내용은 약사여래의 공덕과 약사여래를 신앙한 사람들이 받게 될 좋은 과보, 그리고 제자들에게 구리로 약사여래상을 만들어 중생들을 구제하고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고, 그 공덕으로 황제와 국왕, 문무관료, 국가의 평안을 담고 있으며, 더불어 불상 조성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이 자유분방하게 쓰여져 있다. 

가치 및 의의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고려시대 불상의 도상적, 양식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이상적 신체비례, 적절한 양감을 통한 입체적 표현 등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다. 복장발원문에 의해 불상의 제작연대와 존명 등이 밝혀져 있어, 고려 후기 불교 도상학의 기준이 되며, 발원문에 적힌 다양한 기록들은 고려 후기 사회의 사회, 경제, 불교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료로써 가치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6월 23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참조항목

장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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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동영상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장곡사 하대웅전에 있는 불상 보물 제337호 고려시대 때 제작된 불상으로 청양 칠갑산 장곡사 하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불상의 자세는 길상좌로 위엄을 갖추고 있다. 처음 불상이 제작될 때 만들어진 대좌와 광배는 없어지고 현재는 불상만 남아 있으며 얼굴은 갸름하게 표현되어 있다. 왼손은 가슴에 들어 약호를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치켜들어 엄지와 중지를 대면서 다른 손가락들도 굽히고 있는 약사불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