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사업

잠사업

[ 蠶絲業 ]

요약 양잠업(養蠶業)과 제사업(製絲業)을 합친 산업.
잠사과학연구 100주년기념비

잠사과학연구 100주년기념비

양잠업은 누에를 쳐서 고치를 생산하는 산업이고, 제사업은 그 고치로 생사(生絲)를 생산하는 산업을 말한다. 세계에서 잠사업을 하는 나라 수는 40여 개국에 이르나, 주요 생산국은 중국·일본·한국·러시아·인도·브라질로 이들 6개국 생사생산량은 세계 총생산량의 95%를 차지한다. 잠사업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큰 피해를 받았으나, 대전 후 순조로운 발전·회복으로 1977년 세계 생산량은 고치 39만 2200 M/T, 생사 80만 8900표(1俵=60kg)로 38년 대비 고치 91%, 생사 87%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 잠사업이 근대적 의미의 산업으로 발전을 이룩한 것은 1925∼1939년까지의 15개년간을 계획기간으로 한 '견사생산(繭絲生産) 100만 석 증수계획'인데, 한국 잠사업 부문에서 처음 실시했던 중장기 계획으로 일제가 그만큼 식민지 산업으로 잠사업에 눈독을 들인 때문이다. 즉, 농가경제 향상을 기하고 수출무역진흥의 자원이 되며 한국의 자연적·인적 요소를 적당히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내세워 잠사업의 지도·장려로 생산견사 3만 1400M/T 증수계획을 수립·실천함으로써 이 계획 착수 직전인 1923년 견사생산량 약 6,000M/T, 양잠호수 40만 호, 뽕밭면적 3만 ha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 목표연도인 1939년 견사생산량 2만 569M/T, 양잠호수 82만 3412호, 뽕밭면적 8만 2035ha로 견사량은 계획기준연도인 1925년 대비 2.3배가 성장했으나 목표연도 계획대비 57%에 불과했고 양잠호수는 100만 호의 82% 선, 뽕밭면적은 10만 ha의 82% 선으로서, 생산기반면에서는 계획에 접근된 조성을 보였지만, 견사생산실적은 계획과 대비하여 크게 부진하였다. 이는 1930년 전후 세계 경제공황의 영향으로 생사값 폭락, 지원시책의 후퇴 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생사값이 폭등됨에 따라 일제는 다시 6개년 견사생산계획(1940∼1945년)을 수립하여 섬유자원 부족을 한국의 잠업증산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화(戰火)가 심화됨에 따라 증산노력도 불구하고 감산 일로를 걷고 말았다. 8·15광복 후 불안정한 사회환경과 6·25전쟁으로 한동안 혼란 속에 빠졌으며, 고치값의 수준이 낮은 것도 원인이 되어 고치의 생산량은 별로 늘지 못하고 잠사업은 침체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잠사업은 수출산업으로 국가경제상·농촌경제상 매우 중요한 산업이어서 정부는 그 증산에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

1962년부터 제1차 증산 5개년 계획을 세워서 목표연도인 1966년에는 새로이 7만 4000ha의 뽕밭을 만들어 1만 4625M/T의 고치를 생산했고 1388M/T의 생사를 수출함으로써 1500만 달러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후 1967∼1971년까지 제2차 경제개발계획의 중요사업 중의 하나로 제2차 잠업증산계획을 수립 추진한 결과, 목표연도인 1971년에는 8만 1356ha의 뽕밭, 2만 4691M/T의 고치생산, 3041M/T의 생사류 생산으로 7,900만 달러의 외화획득을 가져올 만큼 기준연도 대비 뽕밭에서 약 110%, 고치생산에서 약 1,699%, 생사수출·외화획득에서 약 527%의 성장을 가져왔다.

잠업증산사업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72년부터 제3차 증산계획의 추진으로 1976년도에 뽕밭 8만 2876ha, 고치생산 4만 1704M/T, 생사생산 1만 5258M/T로 생사류 수출고는 2억 7000만 달러에 이르러 그 성장 역시 기준연도인 1972년 대비 뽕밭 면적 105%, 고치생산 156%, 생사류 수출고 238%의 성장을 보였다. 그러나 1973년 오일쇼크에 따른 국제경제 침체로 생사값이 오르지 않고 수출이 부진할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농촌의 노동력 부족 및 임금상승 등의 이유로, 다시 감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서 1980년에 뽕밭면적 3만 6614ha로 1976년 대비 약 44% 수준, 고치생산 약 49% 수준, 생사류 수출실적은 2억 4400만 달러로 90% 수준으로 감산되었다. 1990년 뽕밭 면적은 1980년의 50% 이상 수준으로 줄었다. 이러한 생사감산 현상은 노동력부족·임금상승도 원인이겠으나, 화학섬유의 보급 확대로 계속 줄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