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준
[ 任元濬 ]
- 요약
조선 초기 문신 겸 학자. 예문관직제학 때 명나라 영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표전문을 지어, 왕의 격찬을 받았다. 좌찬성 때 최항 등과 함께《경국대전》편찬에도 참여했다. 문장이 뛰어났고 경사와 의학에도 정통했으며 저서에 의서인《창진집》이 있다.
임원준 선생 묘
출생-사망 | 1423 ~ 1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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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풍천 |
자 | 자심 |
호 | 사우당 |
시호 | 호문 |
활동분야 | 정치, 문학 |
주요저서 | 《창진집》 |
본관 풍천(豐川). 자 자심(子深). 호 사우당(四友堂). 시호 호문(胡文). 1445년(세종
27) 집현전 찬서국(撰書局)에 발탁되어 1447년 부사정(副司正)이 되었는데,
1453년(단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456년(세조 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급제한 데 이어, 145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같은
해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 때 명(明)나라 영종(英宗)의 즉위를 축하하는
표전문(表箋文)을 지어, 왕의 격찬을 받았다.
1462년 호조참판으로서 《의약론(醫藥論)》을 주해하였으며, 1466년에는
발영시(拔英試) ·등준시(登俊試)에 각각 급제를 하였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서하군(西河君)에 책봉되었다. 좌찬성(左贊成) 때
최항(崔恒) 등과 함께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도 참여하였으나,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 후 아들 사홍(仕洪)의 죄로 관직이 삭탈된 후 추살(推殺)되었다.
문장이 뛰어났고 경사(經史)와 의학(醫學)에도 정통하였는데, 저서에 의서인
《창진집(瘡疹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