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

임나

[ 任那 ]

요약 상고시대에 경상북도 고령(高靈) 지방에 있었던 부족국가.
대가야 제철로

대가야 제철로

임나가야(任那伽倻)의 줄임말로, 신라에서는 금관가야(金官伽倻) 다음에 6가야의 맹주국(盟主國)이었다고 하여 대가야라고 불렀다. 그 본명은 미마나(彌摩那, 또는 임나)인데,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미마나 일본부[任那日本府] 등으로 기록된 것을 근거로, 일본 학계가 일본의 가야지배설을 주장하여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에 대한 한국 학계의 반론은 꾸준히 계속되어 최근 천관우(千寬宇)는 《가야사복원시론(伽倻史復元試論》(1983.4)을 통하여, 서울 강동(江東)에 본거지를 두었던 백제가 369년(근초고왕 24) 처음으로 전남 해안방면까지 진출하는 과정에서 낙동강 방면의 가야지역도 그 세력권에 편입시켜 그로부터 500년경까지 가야 전역은 백제의 세력권 내에 들었음은 《일본서기》의 신공기(神功紀)에도 있다. 백제는 전라도 지역뿐만 아니라 경상도 방면으로 세력 확장을 꾀하여 4세기의 근초고왕 때부터 임나(가야)가 백제를 '부형(父兄)'으로 모셨고, 6세기의 성왕 때에는 백제와 신라가 대구∼함안 중간의 구례산(九禮山)을 두고 쟁탈전을 벌였으며, 이 시기에 임나의 몇몇 지역도 백제에 속했었음은 《일본서기》 《삼국사기》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또한 400년 전후의 고구려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에 보이는 '임나가라(任那加羅)'는 이미 백제의 세력권에 들어간 임나가 백제를 지원하여 고구려와 싸웠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일본서기》에는 이 시기(4∼6세기)에 임나국사(任那國司) 일본부행군원수(日本府行軍元帥)가 임나를 지배하였다고 기술한 것은, 이 전후의 정세로 보아 도저히 긍정할 수 없는 점이며, 그것은 도리어 '백제의 가야방면 파견군사령관'과 같은 직책이라는 반론을 제기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역참조항목

대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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